윌리 리 모로, 샌디에이고에 새로운 거리 이름으로 그의 유산 기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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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 리 모로는 발명가, 기업가, 미디어 개척자, 교육자, 교사, 멘토로서 샌디에이고를 넘어 그의 문화적 유산을 남겼습니다.
2022년에 세상을 떠난 모로의 이름이 그의 유산을 기리기 위해 수년 간의 노력 끝에 샌디에이고의 거리 이름으로 밝혀졌습니다.
모로의 이름은 그의 85번째 생일인 목요일, 엔칸토의 투리 거리에서 공개되었습니다. 이 기념식은 샌디에이고 시의회 의원 헨리 포스터 3세와 활동가이자 옹호자인 션 해리스의 주관으로 진행되었습니다.
해리스는 성명에서 “이것은 단순한 거리 표지판이 아닙니다. 한 남자의 놀라운 재능과 그의 사람들에 대한 헌신이 여전히 오늘날 여러 세대를 고양시킬 수 있는 유산을 남길 수 있음을 상징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해리스의 제안은 이후 시의회 의원 헨리 포스터가 샌디에이고 시의회에 제출했으며, 포스터는 이 조치를 후원했습니다.
포스터 의원은 “윌리 L. 모로 박사는 뛰어난 혁신가이자 기업가, 그리고 지역 사회 건설자로서 그의 영향력은 샌디에이고를 넘어 달했습니다”라고 전했습니다.
“모로 박사를 거리 이름으로 기리자는 생각은 지역 활동가 션 해리스에 의해 시작되었습니다. 그는 이 제안을 처음으로 제안했습니다.”
포스터 의원은 모로의 딸인 셜리 모로도 이 노력을 강력히 지지했다고 덧붙였습니다.
“이 아이템을 시의회에 제출할 수 있었던 것은 제게 영광이었습니다. 이 안건은 만장일치로 승인되었습니다.”
모로는 1939년 앨라배마에서 태어나 1959년 샌디에이고에 있는 독립 이발 학교에 다니기 위해 이주했습니다.
그는 이후 마켓 스트리트에 자신의 이발소를 열었습니다.
머리 스타일은 개인의 표현과 스타일의 중요한 측면으로, 특히 흑인 머리는 미국 내 인종 차별과 차별의 복잡한 맥락 속에서 매우 정치적인 의미를 지닙니다.
모로는 1960년대 자연 머리가 인기를 끌기 시작하면서 이 문제에 정면으로 도전했습니다. 그는 아프로 피크를 만들었고, 나중에 제리 컬로 알려지게 되는 캘리포니아 컬이라는 이완 머리카락 치료법을 개척하여 헤어케어를 혁신적으로 변화시켰습니다.
포스터 의원은 “그는 대대적인 바버, 스타일리스트 및 젊은 기업가들을 멘토링하며, 자신이 속한 지역 사회를 떠나지 않고도 성공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의 삶의 작업은 자부심과 창의성, 그리고 권한 부여를 향한 깊은 헌신을 반영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이발소, 흑인 헤어케어 분야의 선구자적 작업, 그리고 흑인 목소리를 증폭시키는 미디어 사업을 통해 다른 사람들에게 기회를 창출하였습니다.”
모로는 또한 국방부 계약을 통해 군대를 방문하며 블랙 헤어 컷에 대한 적절한 기술을 교육하기 위해 세계를 여행했습니다.
그의 이발소는 전 프로 운동선수이자 예술가인 어니 반즈의 유명한 그림 “윌리의 이발소”의 주제로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모로는 화학자라는 직업 외에도 1979년 XHRM (현재의 매직 92.5)을 창립하였으며, 1986년에는 흑인 중심의 신문인 샌디에이고 모니터를 창간했습니다.
셜리 모로는 “여기서 아버지는 그의 꿈을 실현하였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사람들이 윌리 모로 웨이를 거닐 때, 그들이 영감을 느끼길 바랍니다. 그들 스스로의 이웃에서 brilliance가 나올 수 있다는 것을 알길 바랍니다.”
이미지 출처:timesofsandieg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