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ctober 23, 2025

1920년대 한국 재즈: 잊혀진 음악의 상흔과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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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2월, 한국의 분주한 거리를 누비던 필자는 한국의 음악 역사에서 잊혀진 재즈의 존재를 깊이 탐구하게 되었다. 한국의 독특한 음악적 환경 속에서 필자는 1920년대 재즈가 한국에 어떻게 들어왔는지를 고민하게 되었다.

특히 한국 재즈의 시작점인 1926년에 창립된 ‘한국 재즈 밴드’에 대한 이야기는 그 역사적 중요성을 더욱 부각시킨다. 홍난파, 박건원, 백명곤으로 구성된 이 밴드는 한국의 재즈의 첫 문을 열었으나, 이후로도 별다른 인정을 받지 못했다.

역사적으로 식민지 시대의 압박 아래에서, 우익 계층으로 분류된 이들의 음악 활동은 당시 사회에서도 비난의 대상이 되었다. 제국 일본의 통제 아래에서 재즈는 희망과 기쁨을 제공하는 음악으로 간주되었으나, 그 음악 뒤에는 복잡한 정치적 배경이 얽혀 있었다.

특히 재즈가 아닌 ‘트롯’이나 전통 음악에 비해 재즈는 상대적으로 이해가 부족했고, 상류층의 음악으로 여겨졌다. 당시 재즈는 한국의 대중 음악 활동과 상충하는 점이 많았고, 그로 인해 오늘날까지 그 흔적은 많이 사라지고 말았다.

이와 관련된 배경은 ‘모던함’을 쟁취하기 위한 한국 사회의 갈등에 뿌리를 두고 있다. 1920년대 한국의 재즈 음악은 당시 일본의 영향을 받았지만, 그 자체로 강한 정체성이 부족한 상태였다. 새로운 음악 장르로서 재즈가 들어오기는 했으나, 대중들에게 그 음악이 ‘재즈’임을 인식하게끔 하는 교육이나 접근이 부족했다.

사람들은 농촌과 도시가 얽힌 전통적 음악에서부터 새로운 장르로의 전환을 겪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는 정치적, 사회적 혼란을 동반했으며, 결국 한국의 재즈는 형식적이며 제한적인 상태에서만 존재했다.

1930년대에 들어서는 여러 레코드가 제작되었으나, 그 내용들은 오늘날 우리가 아는 ‘핫 재즈’와는 거리가 멀었다. 여러 아티스트들이 일본의 영향을 받으며 한국적인 색깔을 입히기 위해 고군분투했지만, 그 재즈는 대부분 약화된 형태로 그쳐야 했다.

특히, 1939년의 레코드들은 그 시기의 혼란스러운 사회적 배경 속에서 창조된 결과물로, 당시 대중음악의 발전 방향을 보여준다. 전통과 현대가 뒤섞인 음악들은 그 뿌리까지 추적하기 어려운 결과를 낳았다.

그 후, 제2차 세계 대전과 한국 전쟁으로 인해 재즈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해야 했다. 전쟁의 아픔과 식민지의 상처는 한국 사회에서 제재받던 음악의 한 축을 아예 없애버리기까지 했다. 이로 인해 한국 전후 사회에서 트롯과 스윙이 두드러지게 발전하게 된다. 다로부터 추적할 수 있는 재즈의 흔적들은 이제 명맥을 잇기가 힘든 상황에 처했다.

쌍방의 광고 및 프로파간다가 상반된 양상으로 한국의 재즈 전통을 단절시킨 것이다. 한국 사회는 빠르게 잊고 중단된 재즈의 기억을 지워갈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 우리는 이제 과거의 아픔을 앓고 있는 한국 재즈에 대해 질문을 던지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의 한국 사회에서도 스윙과 재즈 리듬들이 새롭게 되살아나고 있다. 20세기 초의 핫 재즈는 한국 사회 속에서 조용히 피어오르고 있으며, 조만간 새로운 ‘핫 재즈의 부활’을 기대할 수 있는 기회가 올 수 있기를 바란다. 새롭게 해석된 재즈의 형태가 한국 대중음악에 흡수되어 가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 될 것이다.

향후 우리에게 다가올 한국 재즈의 재발견은 과거의 상처를 치유하고 새로운 문화로 나아가는 시작점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이미지 출처:syncopatedtim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