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정보 전파의 선두주자 김성민, 암 투병 끝에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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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유명 탈북자 김성민이 6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김성민은 서울에 본사를 둔 자유북한방송의 설립자로, 북한의 권위적인 정부의 진실을 알리기 위해 라디오 방송, USB 스틱, 그리고 정보망을 활용했다.
그는 최근 간으로 전이된 폐암과의 전투 끝에 서울 병원에서 금요일 사망했다. 김성민의 전 동료들은 그가 화장된 후 그의 유골이 북한과의 국경 근처의 봉안당에 안치되었다고 전했다.
“우리는 북한 탈북자들 중 한 명의 지도자를 잃었다. 우리가 다시 이런 지도자를 가질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는 진정으로 우리의 희망이었다.”고 김과 7년을 함께했던 탈북자 최중훈이 말했다.
김성민은 1999년 한국에 도착한 북한 군 출신 대위로, 2005년 북한 내외에서 외신에 대한 접근이 거의 불가능한 상황 속에서 북한으로의 단파 라디오 방송을 시작했다.
그의 방송은 북한 탈북자들의 성공 이야기를 전하고 북한의 권 ruling Kim 가족의 호화로운 생활에 관한 소문과 대한민국, 미국 등의 정치 뉴스를 다루었다.
2012년 미국 대선 전, 김성민은 AP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방송이 미국의 선거 제도를 설명하는 특별 프로그램을 녹화했다고 밝혔다.
그는 “우리는 북한의 선거 시스템은 단 한 후보가 거의 100%의 투표를 받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리고 한국에서 한 후보가 50% 이상의 투표를 얻기 어려운 이유는 다양한 의견이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김의 방송은 또한 플라스틱 병에 USB 스틱을 담아 바다에 띄워 북한 해안으로 떠내려가도록 했다. 그는 북한 내의 불법 모바일폰 연락망을 통해 정보를 전달받고 이를 다른 지역의 북한 사람들에게 중계하는 방법을 사용했다.
김성민은 북한 인권 문제를 비판하는 집회, 포럼, TV 프로그램에 자주 출연하여 목소리를 내었다.
그의 활동은 북한 정부를 화나게 했으며, 북한의 국가 매체는 그를 “인간 쓰레기”로 비난했다. 또한 김은 한국 내 친북 단체로부터 죽은 쥐와 칼로 찔린 인형이 담긴 소포를 받기도 했다.
2014년 AP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김은 북한 뉴스의 신뢰성 문제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는 북한과의 통화를 통해 정보를 얻곤 했지만, 때때로 잘못된 정보가 전해지기도 했다고 말했다.
“북한에 관한 이야기는 많고, 그 모든 이야기가 북한을 찬양하지 않는 한 좋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사람들이 북한의 독재 정권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고 그는 말했다.
김성민은 북한 탈북자들 중 방송을 들었다고 말하는 이들이 있을 때마다 큰 성취감을 느꼈다고 전했다.
그의 후임이 된 이시영은 김과 약 10년 간 함께 일했으며, 김과의 첫 만남에서 그가 자신이 듣던 방송의 목소리라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던 순간이 매우 흥미로웠다고 말했다.
현재의 자유한국당 정부는 북한과의 긴장을 완화하려 노력하면서 외부 뉴스를 북한으로 전파하는 시민 캠페인에 많은 어려움이 있다고 밝혔다.
이시영은 김성민이 방송을 통해 “우리의 북한으로의 뉴스 전파 노력은 마지막 탈북자가 남을 때까지 중단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음을 언급했다.
김성민의 목소리는 현재 방송에서도 그대로 사용되고 있다.
김성민의 유산은 북한 사람들에게 진실을 알리기 위한 그의 끊임없는 노력 속에서 길이 남을 것이다.
이미지 출처:independ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