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논 밀러와 바리 타시안, 리메인즈의 이야기
1 min read
보스턴 – 리메인즈의 가수 겸 기타리스트인 바리 타시안은 1963년 영국을 방문했을 때 여러 영국 밴드를 자신의 밴드를 결성하는 데 영감을 주었다고 밝혔다.
그는 뉴 잉글랜드 음악 박물관과의 인터뷰에서 “나는 우리가 결성되기 전 여름에 영국을 여행했다. 롤링 스톤스가 오래된 블루스 곡을 다루는 걸 보고 비틀즈와 킹스도 보았다. ‘이건 훌륭하다.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 흥분을 안고 보스턴으로 돌아와 친구들에게 밴드를 결성할 의향이 있는지를 물었다. 그 친구들은 보스턴 대학교(BU)의 동료인 빌 브리그스, 베른 밀러, 칩 다미아니로, 처음에는 학교의 축제와 케너 모어 스퀘어의 나이트클럽 ‘더 랏’에서 공연하며 시작했다.
리메인즈는 보스턴을 기반으로 한 최초의 록 밴드 중 하나로, 국가적인 인정을 받기 시작했다. 그들은 에픽 레코드와 계약을 맺고 이듬해에는 두 개의 지역 히트 싱글을 발표했다. 또한, ‘더 에드 설리반 쇼’의 크리스마스 특별 방송에서 1천4백만 명의 시청자 앞에서 공연했다.
이 특별한 공연은 타시안의 전 보스턴 대학교 룸메이트 덕분이었다. 그는 그 프로그램의 주요 스폰서 중 하나인 로릴라드 담배 회사의 임원 아들이었기 때문이다.
리메인즈의 경력 중 또 다른 중요한 이정표는 1966년 비틀즈의 공연에서 오프닝 밴드로 나선 것이다. 그러나 단지 2년 간의 록 스타덤과 몇 개의 싱글, 그리고 하나의 자타공인 앨범을 발표한 후, 리메인즈는 해체되었다.
타시안은, “우리는 비틀즈처럼 절대 큰 인기를 얻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며 “나는 원래 드러머인 칩 다미아니가 떠난 후의 감정이 사그라들었다”고 설명했다.
베른 밀러는 이후 다른 지역 밴드를 결성했는데, 그 중 한 밴드는 젊은 도나 서머와 함께했다. 타시안과 그의 아내 홀리도 내슈빌로 이주하여 포크와 블루그래스 듀오로 활동을 이어갔다.
2006년, 이전 멤버들은 다시 만나 유럽 투어를 하였고, 2008년에는 ‘미국의 잃어버린 밴드: 리메인즈의 이야기’라는 다큐멘터리가 보스턴 영화제에서 초연되었다. 그러나 비틀즈의 곡 사용과 리메인즈의 ‘더 에드 설리반 쇼’ 출연에 대한 라이센스 문제로 영화는 페스티벌 이외에는 배급되지 못했다.
현재, 2008년 단편 영화는 리메인즈의 2006년 재결성을 포함하여 재편집된 형태로 코네티컷 공영 방송을 통해 스트리밍되고 있다.
타시안의 아들 다니엘은 송라이터이자 프로듀서로 활동하며 최근 링고 스타의 최신 앨범 ‘Look-Up’의 공동 프로듀서로 참여했다. 타시안의 아내 홀리는 보스턴 글로브와의 인터뷰에서 아들이 링고 스타에게 리메인즈가 비틀즈의 오프닝 밴드로 공연했을 때의 기억이 있는지 물었지만, 스타는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고 답했다고 설명했다.
홀리는 또한 다미아니가 밴드를 떠난 것에 대한 남편의 실망감을 설명하며 “사람들은 밴드가 해체된 이유에 대한 신비함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가 없었던 리메인즈는 그냥 같지 않았다”고 전했다.
바리 타시안은 알츠하이머병 진단을 받았고, 베른 밀러는 리메인즈의 유일한 생존 멤버가 되었다. 칩 다미아니는 2014년에 뇌출혈로 사망했으며, 브리그스는 2024년 3월 생일 후 몇 일 만에 사망했다.
이미지 출처:fiftyplusadvoca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