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와이에 도착한 첫 번째 한국인 이민자들, 120년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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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https://www.hawaiinewsnow.com/2023/10/13/korean-immigration-us-marks-120-years-it-started-with-hawaii/
올해는 첫 번째 한국인이 하와이에 도착한 지 120주년 되는 해로, 대한민국과 하와이 및 미국 간의 역사적 관계의 초석이 되었다.
그들의 여정은 한국의 북서쪽 해안에 위치한 인천에서 시작되었다.
1902년 12월, 100명 이상의 한국 남녀 아동이 하와이를 향해 RMS Gaelic에 탑승했다.
그들은 파인애플과 설탕 농장에서 일하기 위해 하와이에 도착했다.
이 첫 번째 그룹은 그들의 이야기가 시작된 부두 근처에 있는 한국 이민 역사 박물관에서 기념되고 있다.
1903년 1월 13일, 102명의 한국인이 Honolulu에 도착했는데, 이들 중 거의 50명이 여성과 아동으로, 기회와 한국의 가난과 불안정으로부터의 탈출을 위해 이주했다.
그들 중 86명이 인천 출신이었다.
“인천은 한국 반도의 중심이었다. 다른 도시와 비교할 때, 인천 사람들은 새로운 것에 대해 두려움이 적고 호기심이 더 많았다,”고 한국 이민 역사 박물관의 관장인 김상율 씨가 통역자를 통해 말했다.
하지만 농업 노동자를 모집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김 씨는 하와이의 농장 소유자들이 기독교 선교사들에게 일꾼을 찾아줄 것을 요청했다며, 그래서 102명 가운데 절반 이상이 인천의 나에리 감리교회 신도였다고 전했다.
박물관에는 이들 초기 개척자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모집 포스터, 여권,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다.
3년도 채 지나지 않아, 첫 번째 그룹을 따라 7,400명 이상의 한국인이 하와이에 도착했다.
그들의 이름은 박물관의 벽에 새겨져 있으며, 대다수는 노동자, 학생 및 정치적 망명자로서 온 미혼 남성들이었다.
약 800명의 여성들이 사진 신부로 모집되어 이들 미혼 남성과 결혼했다.
중국 및 일본 이민자들과는 달리, 한국인들은 장기 계약에 갇히지 않았다.
많은 사람들이 농장 생활을 떠나 사업을 시작하거나 고향으로 돌아갔다.
그들이 벌어들인 돈은 고국에 투자되어 경제 발전과 인하대학교와 같은 교육 기관을 세우는 데 소중한 역할을 했다.
“해외에서의 기여는 필수적이었다. 해외의 기여자들의 노력과 기여 없이는 오늘날의 한국이 있을 수 없었다,”고 김 씨는 강조했다.
1910년부터 1945년까지 한국은 일본의 지배를 받았고, 하와이에 있는 한국인들은 독립 운동을 지원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그들은 돈을 모아 고국으로 보내며, 고향에 대한 향수와 애국심을 안고 미국에서의 한국 이민의 역사적인 시작을 하였다,”고 인천 시장 유정복 씨가 통역자를 통해 전했다.
이 역사는 또한 인천과 호놀룰루의 20년 자매도시 관계의 뼈대가 되었다고 유 씨는 말했다.
“인천은 해외에 거주하는 모든 한국인의 중심이 되었고, 그들의 활동의 허브가 되었으며, 그들의 미래의 무대가 되었다,”고 그는 덧붙였다.
한국의 디아스포라는 계속해서 성장하고 있으며, 현재 193개국에 750만명이 거주하고 있다.
이 여정은 1903년 Honolulu에 도착한 첫 번째 그룹에서 시작되었다.
디아스포라 중 한 명인 하와이의 독립 영화 제작자 진영 원 씨는 하와이의 한국 이민자들의 감동적인 이야기와 그들의 희생, 고국 및 수용국에 대한 기여를 공유하는 다큐멘터리 시리즈 “무지개 주에서의 지혜의 말”을 감독하였다.
이 시리즈는 무료로 시청할 수 있으며, 웹사이트 theRainbowWords.com에서 확인할 수 있다.
원 씨의 뮤지컬 다큐멘터리 “사랑의 노래”는 하와이에 있는 한국계 미국 이민자들에 대한 이야기로, 10월 19일 오후 5시 30분에 하와이 국제 영화제에서 처음 상영된다.
티켓은 hiff.org/events/songsoflove에서 구매할 수 있다.
매주 목요일 오후 5시에 KGMB 및 KHNL 또는 라이브 스트리밍으로 HNN의 특별 시리즈 “Focus on Korea”의 새로운 에피소드를 시청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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