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ctober 24, 2025

전직 필라델피아 주교 허버트 A. 비바드 추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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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직 필라델피아 주교 허버트 A. 비바드가 세상을 떠난 가운데, 그의 신실한 봉사와 사랑으로 기억되고 있다. 79세로 세상을 떠난 비바드는 예수님과 성모 마리아에 대한 헌신으로 알려져 있으며, 필라델피아 대교구와 미국 버진 아일랜드의 성토마스 교구에서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아왔다.

비바드는 9월 20일 노퍽, 노스캐롤라이나에서 평화롭게 생을 마감했다.

그의 장례 미사는 9월 26일 금요일 오후 2시에 필라델피아의 성 아타나시우스 교회에서 거행된다. 교구의 친구인 퇴임한 루이빌 대주교인 조셉 E. 커츠가 미사의 주례자로 나설 예정이다.

장의는 옥스포드 묘지에 이어질 예정이다.

넬슨 J. 페레즈 대주교는 비바드 주교의 별세에 깊은 슬픔을 표하며, “비바드 주교는 자신의 사역을 통해 하나님과 성모 마리아의 보호를 의지하며 사랑과 겸손, 기쁨의 정신으로 봉사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한 “그가 만난 수많은 영혼들, 특히 필라델피아의 성 아타나시우스 교구의 전직 신자들에 대한 감사와 애정은 그에게 사랑으로 되돌려졌다”고 덧붙였다.

페레즈 대주교는 비바드 주교의 가족과 친구들, 성토마스 교구와 필라델피아 대교구의 모든 성직자 및 신자들에게 기도의 마음을 전하며, “하나님이 비바드 주교에게 영원한 생명을 허락하시길 기원하며, 우리 성모님이 그를 사랑했던 모든 이들에게 위로의 세상을 감싸주시길 바란다”라고 기도했다.

비바드의 초기 회심과 평생의 친구들

허버트 암스트롱 비바드는 1946년 메릴랜드주 볼티모어에서 태어나, 고(故) 찰스 라이트 비바드와 캐서린 샤퍼 비바드의 두 아들 중 하나였다. 가족은 옥스포드, 체스터 카운티로 이사하여 비바드의 신앙의 씨앗이 뿌리 내리게 되었다.

비바드의 가족은 개신교 신자였으나, 어린 허버트는 5학년 때 가톨릭 교회에 끌리기 시작했으며, 성심 교회에서 제대 봉사를 통해 교회에 입회하기 위한 교육을 받기 시작했다.

그는 고등학교를 위해 다시 볼티모어로 돌아갔고, 졸업 후 정식으로 가톨릭 신자가 되었다. 이후 그는 펜실베이니아주 카르라일 근처의 디킨슨 대학에 2년간 다니다가, 성 찰스 보로메오 신학교에 진학하여 사제로서의 성장을 이어갔다.

그가 1966년에 신학교에 입학했을 때, 그는 평생의 친구들이자 동급생들과 함께였다.

“그는 하나님의 사람 중 한 사람이었고, 그 존재의 상실은 정말 아쉽다”고 SS. 필립과 제임스의 은퇴한 주임사제인 조셉 디악하우스 신부는 말했다. “그는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진 사제였다.”

비바드는 1974년에 사제로 서임되었지만, 그는 두 해의 대학 과정을 마쳐 1972년에 필라델피아 교구의 사제로 서임을 받았다.

클로즈프렌드인 조셉 커츠 대주교는 “그는 내 형제와 같았고, 내 가족에게도 형제 같았다. 우리는 매우 가까웠다”고 회상했다.

비바드는 “매우 사교적인 사람”이라며, “그의 앞에 있는 사람은 가장 소중한 사람이었다. 필라델피아에서는 특히 그가 14년간 주임사제로 재직하던 때가 기억에 남는다”고 덧붙였다.

성 아타나시우스에서의 에너지와 기쁨 가득한 사제

여러 교구에서 사목 사역을 한 후, 비바드는 필라델피아의 서부 오크 레인에 위치한 성 아타나시우스 교회의 주임사제로 임명되었다.

그는 교회의 정원을 직접 가꾸는 등 맡은 바 사명을 하나하나 열심히 수행하였다.

그는 한 신부 친구에게서 장비를 제공받아 교회 주변의 야적장을 정리하고, 필요한 곳을 더욱 아름답게 만들어 나갔다.

신자들에게 성체를 배달하며, 그들이 겨울철에 마주하는 눈을 치우기 위해 트랙터를 이용해 주변을 돕고, 인근의 거리의 신자들만이 아니라 이웃들에게도 도움을 주었다.

교회는 20년 동안 사용되지 않았던 다시 열리던 때, 한 신자가 이리저리 도와주기 위해 자신이 나사는 모습을 목격했다고 한다.

비바드는 사랑하는 교회를 재개방하기 위한 교회의 웅장한 변화를 이끌어냈다.

“그는 정말 많은 에너지와 행복으로 가득 차 있었다”고 52년째 성 아타나시우스의 신자 루이즈 프레이저는 말했다. “그는 만났던 모든 사람을 알고 싶어 했습니다. 그를 사제로 두게 되어 정말 기뻤습니다.”

신자 제니스 토마스는 그를 “하나님을 사랑하는 따뜻하고 겸손한 사람”이라고 불렀다. “그의 신앙에 대한 설명은 겸손했기에 그에게 매료되었어요.”

그녀는 “내가 겪었던 모든 의심과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비바드 주교의 그리스도교 신앙을 사는 모습이 내가 계속해서 가톨릭 신자로 남아있는 이유”라고 덧붙였다.

미국 버진 아일랜드의 주교로 부름받다

2008년, 베네딕토 16세 교황은 사랑받는 주임사제를 서부 오크 레인에서 미국 버진 아일랜드의 주교로 부르셨다.

현재 성 아타나시우스의 주임사제는 “사람들은 비바드 주교에게 큰 사랑을 보였다. 그는 자신의 삶을 신앙의 본보기로 여겼다”고 말했다.

비바드는 가톨릭 신자로서의 자신의 경험을 통해 훌륭한 사목 지도자를 보여주었고, 교인들의 신앙을 이끌어냈다.

“그것은 비바드 주교가 제일 행복한 시절이 성 아타나시우스에서 보낸 날들이었다”고 아키에일 커츠 대주교가 인용했다.

그의 거주지는 바닷가로 자연에 둘러싸여 있었으며, 그는 바닷물에서 즐거움을 누렸던 것은 물론, 친구들과 함께 바다를 다니는 일을 너무 좋아했다.

인기 있는 주교인 비바드는 숲속에서도 즐거움을 누리며 교회와 학교를 부지런히 관리했으며, 자선 사업도 확장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는 평소 바다와 함께 해양 활동에 많은 시간을 투자한 모습은 사람들 사이에서 널리 알려져 있었다.

프렌즈 아키엘 커츠에 따르면, “그는 수영, 서핑, 스쿠버 다이빙을 정말 사랑했다. 그의 성격은 매우 playful (장난기 가득한) 하였다”며, 비바드를 기억했다.

그의 사목과 인생에서 바다와 산의 존재는 매우 중요했다. 그의 우정은 진정한 사랑으로 기억될 것이다.

비바드는 또한 오페라의 화음, 프랑스어 학습, 유럽 투어 등을 통해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것을 즐겼다.

“그는 자신의 하느님에게 최대의 사랑을 쏟은 사람이며, 그의 유산은 항상 살아있을 것”이라고 아키엘 주교는 말했다.

하느님과 그분의 사람들을 향한 사랑

그의 다채로운 봉사에도 불구하고 비바드는 기도와 경건한 마음을 늘 잃지 않았다.

그는 성모 마리아를 특별히 사랑했으며, 자신의 사목을 통하여 그 사랑을 뚜렷하게 드러냈다.

“그는 신실하고 본보기가 되는 사제이자, 이상적인 주교로서 교회의 가르침을 완벽하게 의미하고 있었다”고 동급생인 패트릭 스위니 몬시뇰이 말했다.

“그는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있도록 자신의 마음을 쏟았다. 이로 인해 신자들이 하느님을 더욱 가까이 접할 수 있도록 도왔다”고 덧붙였다.

비바드를 알고 사랑했던 이들은 그의 폭넓은 사랑과 신앙이 성도로서의 삶의 본보기가 되었음을 잊지 않을 것이다.

토마스 신자가 한 번 병원에 입원했을 때, 비바드 주교가 그녀의 건강 상태를 걱정하며 약을 직접 가져다주기 위해 약국으로 갔던 일은 잊을 수 없는 기억으로 남아 있다.

비바드 주교가 세상을 떠난 지금, “세상은 위대한 빛을 잃었다”고 토마스가 말했다. “그는 이제 편안히 쉬고 고통에서 벗어났습니다.”

“비바드는 자신의 사람들을 사랑했으며, 그들도 그를 사랑했다”고 아키엘 신부는 회상했다.

이미지 출처:catholicphil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