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쿠버 구시가지 묘지의 역사적 인물들
1 min read
밴쿠버의 구시가지 묘지에 들어서면 13번가에서 시작하는 길을 따라 걷게 된다.
왼쪽에는 컬럼비아 랜캐스터 판사의 묘지를 표시하는 높은 돌 기둥이 눈에 띈다.
그는 이곳에 마차로 여행하며 워싱턴 주 역사에 큰 기여를 했다.
랜캐스터는 미시간, 오하이오 그리고 밴쿠버에서 법률을 실천했다.
1847년부터 1849년까지 그는 오리건 임시 정부의 7번째 최고 판사로 봉사했으며, 클락 카운티에서 가장 오래된 맨션 중 하나를 리지필드 근처에 세웠다.
그는 워싱턴 영토의 첫 번째 의회 대표로 선출되었으며, 허드슨 베이 회사 소유 부동산의 미국 구매 협상에 기여했다.
랜캐스터는 1867년과 1871년에 클락 카운티 보안관으로 선거에서 승리했다.
그의 묘지 근처에는 다른 개척자들도 함께 묻혀 있다.
에스더쇼트(1806-1862)는 밴쿠버의 창립자로 알려져 있으며, 그녀의 남편인 에이모스와 함께 허드슨 베이 회사와의 토지 분쟁을 겪었다.
에이모스는 배 난파로 인해 목숨을 잃었지만, 에스더는 영국 모피 회사에 맞서 싸움을 계속했다.
이 회사는 그녀와 자녀를 콜롬비아 강의 노 없이 배에 두 번이나 버렸다.
한 부모로서 에스더는 알타 하우스와 이후 태평양 하우스라는 두 개의 여관을 세웠고, 강변 토지를 임대해 부두를 만들었다.
그녀는 유언으로 도시의 공원에 해당하는 토지를 기부했다.
이 공원은 에스더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다.
클락 카운티에 등장한 유명한 히든 가족의 첫 번째 멤버는 로웰 히든(1839-1923)이다.
그는 버몬트에서 잠깐 학교에 다녔고, 농부에게 종속되어 있었지만 곧 집으로 돌아왔다.
남북전쟁 동안 귀리와 건초를 팔며 돈을 벌고, 이후 팬마데이터를 거쳐 샌프란시스코로 갔으나 병에 걸렸다.
그의 메이슨 롯지 형제들은 그를 보살펴 주었고, 회복 후 루이스 강에 있는 농장에 보내졌다.
그곳에서 그는 농작물이 피해를 입은 여름을 보냈다.
1869년에는 메리 이스트만과 결혼하기 위해 버몬트를 다시 방문한 뒤, 밴쿠버로 돌아와 1871년 히든 벽돌 회사를 설립하며 지역 건물과 모자 조제 아카데미에 벽돌을 공급했다.
1906년의 지진 이후 그에게는 샌프란시스코로 벽돌을 송출하는 일도 있었다.
엘라 윈틀러(1885-1975)는 독일과 영국에서 학교 선생님으로 일한 후 1938년부터 1965년까지 워싱턴 주 의회에서 공화당원으로 근무했다.
그녀는 마지막 임기 동안 하원 부의장으로 근무했으며, 윈틀러 공원이 그녀의 공로를 기리기 위해 헌정된 공원이다.
아홉 아이 중 막내로 태어난 엘라는 워싱턴 대학교를 졸업했고, 당시 다른 공화당원과는 달리 공공 유틸리티 지역에 대한 아이디어를 지지했다.
버닝 브릿지 크릭과 인접한 39번가 고속도로 출구 근처에는 안나 레버리치가 기부한 공원이 있다.
안나는 어릴 적 대평원을 건넜으며, 그녀와 남편인 벤자민은 배틀그라운드에 위치한 집에서 카운티의 두 번째 우편소를 열었다.
그의 남편은 1900년대 초에 캘리포니아 여행 중 사망했다.
1924년에 안나는 42에이커의 땅을 도시의 공원으로 기부했으며, 그녀의 생존 기간 동안 매년 500달러를 지급받도록 조건을 걸었다.
이미지 출처:columbi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