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ptember 11, 2025

시카고에서의 연설과 미국 민주주의의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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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나는 시카고에서 마틴 루터 킹 주니어의 날 기념 행사에서 연설하는 영광을 안았다.
그 시간, 도널드 트럼프는 워싱턴 D.C.에서 취임 선서를 하고 있었다.
트럼프의 취임 연설은 이민자와 유색 인종에 대한 적대감을 불러일으키는 드럼비트와 같았다.
그와 동시에, 나는 시카고의 흑인 중산층에게 최근 이민자들과 함께 증오와 폭력에 저항할 것을 촉구하는 메시지를 전했다.

이 두 가지의 대비는 나에게 깊은 여운을 남겼다.
최근 시카고에 돌아왔을 때, 이 도시가 미국의 위대한 투쟁의 무대임을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1880년대의 해이마켓에서 노동권을 위해 행진한 이들부터 1960년대의 민권운동, 그리고 올해의 이민 단속과 시위까지, 시카고는 우리 앞에 계속해서 해결해야 할 과제를 던진다.

2025년, 시카고의 거리를 걷다가 1920년대의 복잡한 상황이 연상되었다.
그 당시, 시카고는 재즈가 브론즈빌의 클럽에서 흘러나오고, 할렘 르네상스의 시가 쓰여지고, 산업의 강국으로서의 위력을 발휘하며 다양한 가능성으로 가득 찼다.
하지만 그 창조의 한가운데에는 배제의 아픔도 존재했다.
금주법 단속과 갱단 폭력, 그리고 인디애나주에서 미시시피 근처의 클랜의 반란이 일어나기도 했다.

100년이 지나 오늘날의 시카고는 다시 한번 연방 요원들이 이민자 커뮤니티를 수색하고, 시위가 레이크 쇼어 드라이브에 쏟아지는 소식이 보도되고 있는 가운데 주목을 받고 있다.
인종, 소속감 및 정체성을 둘러싼 긴장이 여전히 표면으로 드러나고 있다.
그리고 1920년대와 마찬가지로, 거리의 사람들은 단순히 “분노한 군중”으로 묘사되기만 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그들이 보이기를 원하는 가족들이며, 존엄성을 요구하는 공동체들이고, 깨진 현 상태를 상속받기를 거부하는 젊은이들이다.

이 상황은 더 긴 미국의 역사 리듬의 일부분이다.
우리의 세기는 종종 십 년 단위로 음률이 비슷하다.
1820년대는 앤드류 잭슨의 대중 운동이 권력을 얻는 시기로, 전 백인 남성을 위한 더 많은 민주주의를 약속했지만, 동시에 잔혹한 인종차별도 유발하였다.
잭슨의 매력은 원주율의 강탈과 멕시코 및 자유 흑인에 대한 적개심을 자극하는 것이었다.
100년 후, 1920년대도 비슷한 선율을 가졌다: 일부에게는 새로운 문화적 자유가 제공되었지만, 이민 단속과 클랜의 부활이 수반되었다.
그리고 현재, 우리는 2020년대에 진정으로 속하는 사람들이 누군지를 놓고의 싸움 중에 있다.

절망에 빠지기 쉽지만, 역사에서는 다른 점을 보여준다.
’20년대는 격변의 시기이지만, 이를 통해 이 나라는 자신의 모순을 마주하게 된다.
’30년대에는 각성이 일어나고, ’40년대에는 이념과 무기의 전쟁이 있으며, ’50년대에는 새로운 불안이 오고, ’60년대에는 개혁의 폭발이 나타난다.
’70년대에는 특이하게도 이 나라가 심호흡하고 다시 자신을 상상하는 시대에 이른다.

1770년대는 미국 혁명과 독립 선언을 가져왔고, 모든 인간이 평등하게 창조되었다는 것을 선언했다.
1970년대는 베트남 전쟁의 종식, 짐 크로우 법의 종말과 여성의 권리, 환경 보호 및 포용성을 위한 새로운 운동의 출현이 있었다.
패턴이 유지된다면, 2070년대는 우리의 손자들이 설립 문서에서 약속하는 민주주의에 더욱 가까워지는 순간이 될 수 있다.

각 세기마다 비슷한 리듬이 흐른다.
’20년대는 항상 격렬하지만, 이를 통해 용기와 창의력, 더 나은 무언가를 만들겠다는 결단력이 요구된다.
내 아들에게 말하듯이, 모든 신세대는 미국 민주주의가 2070년대에 이르도록 보장하기만 하면 된다.
결국, 미국에서는 ’70년대가 ’20년대보다 훨씬 나아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미지 출처:chicag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