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gust 17, 2025

한국인 기독교인, 일본과의 관계 재고찰: 용서와 화해의 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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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자란 한 아이의 시각에는 과거의 역사와 그로 인한 감정이 뚜렷하게 새겨져 있다. 1919년 한국의 3.1 운동에 참여하여 일본 경찰에 의해 감옥에 수감되고 고문당한 후 사망한 10대 소녀 유관순의 이야기는 그에게 깊은 영향을 미쳤다.

그의 초등학교 시절, 한국의 ‘위안부’ 문제를 다룬 TV 드라마를 보았고, 역사 수업에서는 일본 식민 정부가 한국의 언어를 금지하고 한국인의 이름을 일본식으로 바꾸는 등 정체성을 지우기 위해 행한 여러 가지 행동에 대해 배웠다.

교회에서는 일본의 지배를 구약 성경의 출애굽기 이야기와 비교하는 의식이 있었다. ‘일본은 이집트와 같고, 우리는 압박을 받는 이스라엘과 같았다’는 주장이 그것이다.

일본을 한국의 가혹한 억압자로 묘사하는 이러한 이야기들은 저자에게 깊은 불안감과 두려움을 심어주었다, 비록 그는 일본 사람을 만난 적은 없었지만 말이다. 조상들이 겪었던 고난을 생각할 때, 자신의 대대로 이어져 온 일본에 대한 적대감은 타당해 보였다.

8월 15일은 한국이 일본 식민지에서 해방된 날로 매년 기념되며, 이 시기가 다가오면 일본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이 고조된다. 올해는 한국의 해방 80주년을 맞이하여 역사적 억압에 대한 기억을 되살리는 다양한 기념 행사와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그러나 저자는 일본인들과의 우정, 그리고 여러 차례 일본을 방문한 경험을 통해 일본과 한국의 복잡한 역사에 대한 이해가 변화했다고 고백한다. 이제 그는 일본을 에집트가 아닌, 집을 찾는 잃어버린 아들로 보고 있다.

예수님이 비유한 잃어버린 아들의 이야기는 아버지의 무한한 관용을 보여준다. 아버지는 아들이 자신을 배신하고 돌아올 것을 두려워하지만 그를 따뜻하게 맞아주며 기뻐한다. 이는 한국 교회가 일본을 바라보는 시선에도 적용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그의 변화의 시작은 할머니의 이야기에서 비롯됐다. 1924년 한국에서 태어난 할머니는 일본 정부에 의해 만주로 이주된 경험이 있었다. 그가 할머니에게 만주에서의 일본인들과의 관계에 대해 질문했을 때, 할머니는 그곳에서 만난 상냥한 일본 이웃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이 이야기는 그가 일본에 대한 선입견을 극복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이어지는 몇 년 후, 저자는 인도네시아에서 일본 친구 카요를 만나 우정을 쌓게 된다. 두 사람은 각자의 문화를 공유하며 서로의 가족을 방문했다.

이 두 가지 경험을 통해 저자는 선의로 맺어진 우정이 편견과 용서하지 못한 감정을 깨뜨릴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일부 한국의 기독교인들은 여전히 일본에 대한 분노를 감추고 있을지 모른다. 그들은 일본이 과거 잘못에 대해 전혀 사과하지 않는 것에 대해 비판하는 경우가 많다. 일본의 지도자들은 과거의 전쟁에 대한 반성을 표현했지만, 한국은 여전히 제아무리 사과가 부족하다고 느끼고 있다.

일본 제국주의의 역사적 배경을 되짚으면, 일부 일본 역사 교과서에서는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국가들에 대한 일본의 식민지 지배가 축소되거나 아예 언급되지 않기도 한다. 그로 인해 많은 일본인들이 한국이 경험한 고통에 대해 모르고 살아가고 있다.

한 일본의 기독교인 친구인 쇼 이시자카는 자신이 징병으로 동원된 이력이 있는 일본의 역사적 진실을 알게 됐을 때 크게 고통스러워했다고 고백했다. 그는 한국인들에게 자신의 조상들의 잘못에 대해 사과하겠다고 응답했다. 이는 일본 기독교인들이 보여준 진정한 회개의 사례 중 하나이다.

일본의 기독교인들 중 일부는 한국에 대한 공식적인 사과를 해왔다. 1997년, 500개의 일본 교회로 구성된 일본 부흥 협회는 제2차 세계대전에 대한 책임을 명확히 하며 사과를 발표했다.

이처럼 일본의 일부 기독교인들은 진정한 회개를 위해 한국을 찾으며 과거의 잘못을 사과했다. 저자는 한국 기독교인들이 이러한 일본의 수고에 응답하지 않고 분노와 원망만 지속하는 상황이 없기를 바란다.

과거의 역사와 기억을 조명하긴 해야 하지만, 한국의 기독교인들도 그들의 오랜 앙금을 털어내고 화해의 길로 나아가면 좋겠다. 일본의 가해자들에게 요구하는 완벽한 사과를 받지 못할지라도, 오늘날 용서의 정신을 따르는 것은 가능하다.

일본의 8월 15일은 한국과는 당연히 다르게 해석된 날이다. 일본에 있어 그 날은 허무를 넘어 만연한 상실감으로 가득 차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승리를 믿었지만, 전쟁의 패배로 인해 그러한 믿음은 무너졌다.

저자와 한국의 기독교인들은 이제 일본에 대해 더욱 열린 시선으로 바라보려 한다. 일본 정부의 사과가 부족하다고 느끼는 가운데에서도, 기독교인들로서 이러한 관계를 어떻게 개선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는 것이다.

일본과 한국의 관계는 복잡하게 얽혀 있지만, 기독교라는 공통의 연대를 통해 서로를 형제자매로 받아들일 수 있는 길찾기를 해야 한다.

저자는 자녀들에게 일본어를 가르치며, 그들의 친구 카요와의 재회를 기대하고 있다. 이러한 작은 실천이 결국 더 큰 화해로 나아가는 출발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하며, 새로운 세대에게 깊은 우정을 전하기를 바란다.

한국 교회는 복음을 전파하며 일본인의 마음을 열고 신앙을 함께 나누는 길을 모색해야 한다. 선입견을 없애고 서로를 이해하며 용서하는 데 힘쓰는 것이 중요하다.

이런 과정을 통해 한국과 일본은 하나님 안에서 하나가 되는 길을 걸을 수 있을 것이다.

이미지 출처:christianitytod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