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일본, 역사적 상처에서 벗어나 제2의 희망을 찾을 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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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8월 15일은 제2차 세계대전 종전 80주년을 맞이하는 중요한 날이다.
이 시기마다 나는 두 개의 국가, 두 개의 정체성, 두 개의 역사를 사이에 두고 복잡하고 종종 불편한 기분을 느낀다.
일본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나는 어떤 면에서는 ‘식민자’와 ‘피식민자’의 정체성을 동시에 지닌 사람이다.
어릴 적부터 일본이 제국주의적인 과거를 진정으로 인식하고 완전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이야기를 몇 번이나 들은 적이 있다.
‘속죄’라는 단어가 이러한 대화에서 자주 오간다. 마치 일본이 복음을 얻기 위해 이행해야 하는 단일한 행위로 여겨지는 듯하다.
나는 일본의 모든 결정에 대해 변호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며, 한국과 다른 지역에서의 고통스러운 식민지 지배의 현실을 경시하려는 것도 아니다.
내 한국 편이 이를 기억하고 있다. 모친의 조부모는 그로 인해 고통받았다.
하지만 과연 얼마나 오랫동안 죄책감을 안고 살아야 할까? 죄책감이 의례적인 것, 형식적인 것, 심지어 무기화되는 경우까지는 없을까?
국가가 책임을 지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며, 그것은 언제 끝나는 것인가?
한국인들에게 식민지의 기억은 추상적인 것이 아니다. 매우 개인적이고 깊이 있는 것이다.
내 가족은 그 시절을 살아왔으며, 그들의 고통은 진짜였다.
그러나 전후 일본 시민들 또한 많은 이들이 장군들과 관료들에 의해 결정된 일들에 전혀 관여하지 않았고, 자신들의 나라가 시작한 전쟁으로 부서진 채로 신음하고 있었다.
외교적인 언어는 종종 이러한 유산들을 법적 문서와 보상으로 평화롭게 매듭지으려 하였다.
한일은 1965년에 외교 관계를 정상화하였고, 이후 일본 측의 사과와 보상이 몇 차례 이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내 여론 조사에서 일본에 대한 높은 수준의 불신이 지속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수년마다 교과서, 기념물, 영토 분쟁 등에 대한 새로운 논란이 불거지며 겨우 이룬 재화적인 화해를 뒤엎을 위험에 처하게 된다.
역사적 상처는 법적 문서만으로 치유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들은 가정, 교실, 묘지에 존재하며, 단순한 사실로서가 아닌 슬픔, 자부심, 원한과 같은 감정으로 전달된다.
외교적 해결책은 종종 마무리를 목표로 하지만, 기억은 항상 그것에 저항한다.
그러나 불편한 진실은 다음과 같다. 기억의 모든 사용이 치유를 가져오는 것은 아니며, 모든 불만이 영원히 지속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결국 국가는 자신이 원하는 미래의 모습을 선택해야 한다.
과거의 불의가 현재의 정체성을 항상 규정해야 하는가?
만약 그렇다면 식민자는 항상 죄에 의무화되고, 피식민자는 항상 피해자에 머물러야 한다.
그렇다면 상호 존중의 여지가 무엇인가?
한국은 식민지 시절을 기억할 권리가 있다.
하지만 만약 그 기억이 이웃에게 끝없는 도덕적 복종을 요구하는 도구가 된다면, 역사적 정의는 정치적 자본으로 전락할 위험이 있다.
동시에 일본이 식민지 기억의 감정적 진실을 부정할 경우 화해는 항상 손이 닿지 않는 곳에 머무르게 될 것이다.
과거는 잊혀져서는 안 되며, 그것은 연구되고, 논의되고, 기록되고, 정직하게 전달되어야 한다.
그러나 국가들은 자신의 최악의 장면들에 영원히 그림자를 드리우며 살아갈 수는 없다.
죄책감은 정치적 기초가 아니다. 원한도 마찬가지이다.
역사는 미래를 안내해야 하며, 그것에 가두어서는 안 된다.
따라서 80주년 기념일은 잃어버린 것을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여전히 어떤 평화를 구축하고자 하는지를 물어보는 시간이어야 한다.
그리고 일본과 한국이 과연 옛 그림자로부터 벗어나 공유된 미래를 위해 화해할 준비가 되었는지에 대한 질문이 필요하다.
이미지 출처:asiatim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