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스피러시 이론 타투, 덴버의 새로운 예술적 안식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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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버에 위치한 콘스피러시 이론 타투는 몰리 쓰나미와 남편 짐 앤더슨이 운영하는 친근한 타투 샵이다. 2021년 10월, 이들은 예술적 협업 공간으로 탈바꿈한 19세기 후반의 빅토리아 시대 홈에 둥지를 트고, 이상한 물건이 가득한 상점인 더 러닝 레무르와 함께 작업을 시작했다. 이곳에는 유령, 귀신, 혹은 악마가 존재하지 않지만, 상냥한 영혼들과 동료 예술가, 표현의 자유가 가득한 공기 흐름이 넘쳐난다. 이곳은 고객과 자신들에게 ‘집 같은 느낌’을 준다고 쓰나미는 표현한다.
개점한 지 4년이 채 되지 않았지만, 콘스피러시 이론 타투는 이미 덴버의 타투 문화에 깊은 인상을 남겼으며, 올해 웨스트워드의 ‘최고의 타투 샵’으로 선정되었다. 이는 오랜 전통, 계보, 자존심이 얽힌 타투 문화가 만연한 도시에서 이룬 성과이기 때문에 결코 작은 업적이 아니다.
노먼 콜린스, 즉 ‘세일러 제리’는 이 ‘자신의 자리를 쟁취하라’라는 사상을 강력히 지지한 전설적인 인물이었다. 그는 있었던 매장으로 들어온 술취한 고객이나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들을 거부했으며, 자신이 혁신한 미국 전통 스타일의 타투를 받을 자격이 없다고 판단했다. 그의 스타일은 일본의 색채 이론과 구성, 미국의 대담한 선과 애국적인 이미지를 결합한 모습으로, 다양한 문화 간의 다리를 놓았다.
콜린스는 미국 해군 제대 군인으로서, 그의 호놀룰루 샵에 찾아오는 남성 군인과 해군을 특히 좋아했다. 이들은 모두 국가를 위해 싸운 경험이 있는 사람들로, 자신의 의무를 상징하는 문신을 찾고 있었다. 어떤 이들은 화려한 핀업 소녀를 선택했고, 다른 이들은 ‘엄마’ 타투를 선택했으며, 많은 이들이 호랑이나 늑대와 같은 더 격렬한 디자인을 골랐다.
여성들도 가끔씩 그들의 문신 예술을 허락받았지만, ‘여성스러운’ 제약이 그들을 엄격히 묶었다. 허용되는 디자인은 대부분 하트, 나비, 작은 맹금류 같은 것이었으며, 거의 항상 발목이나 허벅지와 같은 은밀한 장소에 배치되었다. 더군다나 ‘좋은 여자’의 명성을 더럽히거나, 더 나쁜 경우에는 당시 서커스에서 공연하는 더 많은 타투를 한 여성들과 같은 부류로 분류되는 것은 피해야 했다.
타투와 여성에 대한 이러한 규칙들은 세일러 제리 시대가 지나면서 단순히 사라지지 않았다. 사실 그들은 다른 형태로 변화했다. 쓰나미는 16년 전 자신의 도제 수련을 시작할 때 이러한 변화의 일면을 체험했다. 그녀는 남성들이 자신의 맹수상인 늑대 상징을 가혹한 방식으로 타투하며, 그녀는 자신이 자아낸 새와 같은 자유를 그리워했다.
그러나 그 도제 수련 과정은 혹독했다. 그녀는 미술적 성장과 사업적 연결을 위해 다른 작업 공간으로 가고 싶었지만, 동료 남성들의 갈굼은 그를 쉽게 허락하지 않았다. 어떤 이들은 공기총 탄환을 쏘아 그녀의 피부를 관통시키는가 하면, 또 다른 도제는 한 번의 실수로 고무 호스에 맞았다. 이곳은 도망칠 곳 없는 젊은 예술가들에게는 혹독한 배척의 공간이었다.
밤이 되면 칼날 같은 늑대들의 비명소리가 더 크게 들려오는 당혹스러운 고난의 재생이 시작됐다. 어떤 아티스트들은 기름 진 햄버거를 손에 쥐고 고객을 타투하기도 하고, 심지어 누운 채 웃음소리를 내며 그들만의 비밀스럽고 기이한 장면을 완성하곤 했다. 쓰나미는 그 미술을 훼손하는 행위에 대해 반항했고, 반면 늑대들은 그녀에게 “이런 것도 못 참는다면 타투 분야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고 말하며 그녀의 걱정과 슬픔의 노래를 조용히 하게 만들었다. 그녀는 날아오르고 싶었지만, 괴롭히는 시선은 어두운 빛속에서 더욱 강렬하게 빛났다.
이러한 흡연재로 가득한 환풍기는 쓰나미의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그리고 그 ‘애국적인’ 시각은 그녀의 눈을 아프게 하는 괴물이 되었다. 그녀는 타투 문화와 그 전통을 존중해야 한다고 믿었지만, 안전을 위협하는 행동은 그 성스러운 규칙의 변질이라고 확신했다.
쓰나미의 첫 번째 진정한 멘토인 데이브 알렌은 지금은 프레이잉 맨티스 타투에서 일하고 있는데, 그녀가 기억하기로 그는 그녀의 훌륭한 조언자였다. 그는 그녀의 비행 경로를 밝혀주는 북극성이 되어주었고, 그 과정에서 포용성에 대한 그녀의 신념을 더욱 강화시켰다. 그녀는 다양성이 새로운 관점을 열 수 있는 힘을 지닌다고 느꼈다.
앤더슨도 과거의 아픈 기억을 품고 있었다. 두 사람 모두 그 상처로 인해 성장하면서, ‘다시는 이런 일이 없어야 한다’는 굳은 결의를 다졌다. 그런 결단의 긴 낙조가 그들의 비전을 이끌었고, 모든 성별 정체성과 배경을 가진 개인들이 개인 표현을 위한 안전한 환경을 찾을 수 있는 공간을 창출하고자 했다.
2021년에 콘스피러시 이론 타투가 문을 열며, 이들은 다양한 아티스트와 고객을 모은 은신처를 만들었다. 이곳에서는 화려한 비늘이 달린 용과 장미가 공존하며, 그 사이에는 실험적인 질감이 얽혀들어가고 있다. 아티스트들은 미국 전통에서 만화 및 사실주의에 이르는 다양한 스타일을 전문으로 한다.
쓰나미는 1920년대 아르 누보 운동에서 영감을 받은 스타일을 애정하고 있으며, 전통 일본 툴의 영향을 받아 현실적으로 표현하는 작업을 즐긴다. 그녀의 작품은 반복적인 패턴과 저명도 낮은 색상으로 그려져 있으며, 두꺼운 선과 가는 선이 조화를 이룬다. 타투를 할 때 그녀는 신중하게 니들을 눌러 작업한다.
세일러 제리 시대 이후 성별 표현과 수용은 일부 발전했지만, 여전히 저항의 집단이 존재한다. 자기 주도적 타투 문화의 확산은 사회적 미디어의 성장과 함께 전세계적으로 번져갔지만, 이로 인해 안전과 윤리에 대한 의문들도 함께 제기되었다. 쓰나미는 예술적 경험과 상관없이 타투가 모든 사람에게 적합하지 않다고 강하게 말한다. 그녀는 예비 아티스트들에게 자신에게 맞는 멘토와 도제 수련을 통해 배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행히도 콘스피러시 이론 타투는 모든 사람들이 상상할 수 있는 창조적 가능성을 탐구하며 다양한 배경에서 아티스트들을 고용하여 각 스타일의 겹침을 최소화하고 있다. 아티스트들은 매달 근처 마차 집에서 열리는 사이드 쇼에 참여하기도 하며, 유리 위에서 걷기, 불놀이 공연, ‘정신 플로싱’과 같은 기묘한 경연에서 새로운 표현을 시도한다.
이 가게는 매년 아트 마켓에서도 다양한 작품을 자랑하며, 예술 작품을 구매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또한 더 러닝 레무르는 이 타투 샵과 협력하여 각종 예술 전시회를 개최하고, 타투를 받기 전 부담스러워 하는 고객들을 위해 새로운 특이한 것들을 소개한다.
또한, 이들은 덴버에 본사를 두고 있는 자선 단체인 L.O.L.A의 개 스튜디오, 센터, 그리고 곧 로컬 랩터 구조 단체와 밀접하게 협력하고 있다.
쓰나미와 앤더슨은 과거의 아픔을 잊지 않고 있으며, 콘스피러시 이론 타투는 길고 힘든 여정을 통해 더욱 강해지고 있다. 이들은 본인들의 경험을 바탕으로 자신이 원하는 민감한 타투 문화를 만들어가고 있으며, 또 다른 고통을 겪는 이들이 안전하게 표현할 공간을 마련하는 데 힘쓰고 있다. 이처럼 타투의 고난과 저항의 이야기는 그들의 가게와 더불어 더 밝은 미래로 이어지고 있다.
이미지 출처:303magaz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