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uly 26, 2025

시카고 블루스의 전설, 지미 로저스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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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이후, 플라스틱 크라임웨이브(스티브 크라코우)는 ‘시카고 음악의 비밀 역사’를 통해 잊혀지거나 과소평가된, 혹은 처음부터 주목받지 못한 시카고 관련 아티스트들을 조명해왔습니다.

최근 몇 개월 동안 내내 어두운 시간들이 계속되면서, 그 어느 때보다도 더 많은 사람들에게 블루스 음악의 힘이 필요해 보입니다. 이런 이유로, 7월에 시카고 블루스 뮤지션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보려고 합니다. 블루스 기타리스트 지미 로저스는 무디 워터스의 초기 사이드맨으로 가장 잘 알려져 있으며, 시카고 블루스의 거의 모든 역사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지미 로저스는 1924년 6월 3일 미시시피주 룰빌 인근 도허티 베이유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의붓아버지인 헨리 로저스의 성을 따랐으며, 미시시피주 반스에서 할머니와 함께 성장했습니다. 어린 시절 그는 친구 스누키 프라이어와 함께 하모니카 4중주를 구성하며 진정한 블루스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았습니다.

로저스는 사춘기 시절 찰스턴으로 이주하여 기타를 배우기 시작했으며, 미시시피 델타 지역에서 하울린 울프, 두 번째 소니 보이 빌리엄슨(라이스 밀러)과 함께 컨트리 블루스를 연주했습니다. 이후 그는 여러 지역을 떠돌다가 1940년대 초 시카고에 정착하게 됩니다.

시카고에 도착하자마자 로저스는 맥스웰 스트리트에서 활동하기 시작했습니다. 이곳은 시카고 블루스의 심장부로 알려진 다문화 허브였습니다. 로저스는 후에 블루스의 대가가 되는 무디 워터스와 함께 공연하며 협업했던 경험도 있습니다.

1940년대 중반, 무디 워터스는 아직 스타가 아니었고, 로저스는 그를 도와 기타 연주를 배웠습니다. 워터스와 함께하는 첫 밴드에서 로저스는 하모니카를 연주하며, 클로드 ‘블루 스미티’ 스미스, 드러머 ‘베이비 페이스’ 레로이 포스터와 함께 무대에 섰습니다. 이후 스미스가 떠나자 리틀 월터가 합류하며 밴드는 ‘헤드헌터스’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1996년에 로저스는 기타 플레이어 잡지의 편집자 자스 오브레흐트와 인터뷰를 하며, 그는 워터스와 함께 쓴 곡들을 서로에게 소개하며 어떻게 연주했는지를 회상했습니다. 그 때 리틀 월터는 그들 곁에 있으면서 노래 작곡자보다는 훌륭한 연주자로서의 위치를 확립해 나갔습니다.

로저스는 1946년에 첫 솔로 레코딩을 했으며, 이는 소규모 하랄렘 레이블에서 리틀 월터와 오서럼 브라운의 트랙에 하모니카로 등장했습니다. 그 이듬해에는 여러 곡에 피처링되었지만, 대중에게 알려진 것들은 그보다 훨씬 후에 발매되었습니다.

로저스는 플로이드 존스, 에디 웨어, 하울린 울프와 같은 아티스트들의 체스 레코드 앨범에도 기여했습니다. 특히 무디 워터스의 곡인 ‘I’m Your Hoochie Coochie Man’와 ‘Mannish Boy’에 연주자로 참여했으며, 이는 그 동시대 블루스 음악의 아이콘으로 자리잡았습니다.

그의 솔로 싱글들도 각각 성공을 거두었지만, 그만큼의 주목을 받지는 못했습니다. 1956년에 발매된 ‘Walking by Myself’는 기타리스트 로버트 록우드 주니어, 피아니스트 오티스 스팬, 하모니카 연주자 빅 월터 호튼과 베이시스트 윌리 딕슨이 함께 했던 곡입니다.

1954년에 발매된 ‘Chicago Bound’는 프로토 록앤롤 사운드로 여겨지며, 백킹 밴드는 시대의 거장들과 함께 했습니다. 로저스는 1960년대 초에 원주율 활동을 했지만, 블루스의 인기가 줄어들면서 음악에서 잠시 물러나게 됩니다.

로저스는 택시 기사로 일하거나 의류 상점을 운영했으며, 그 가게는 마틴 루서 킹 암살 이후의 폭동에서 불타버렸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Chicago Bound’가 ‘Sweet Home Chicago’나 ‘Take Me Back to Chicago’와 같은 유명한 윈디 시티의 앤섬으로 자리잡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니 여러분도 이 곡을 플레이리스트에 추가하고 DJ들에게 틀어달라고 부탁해보는 건 어떨까요?

이미지 출처:chicagoread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