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uly 22, 2025

밴쿠버의 주택 위기와 연방 정책의 영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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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쿠버 주민들은 주택 위기 문제에 대해 널리 동의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 도시는 최근 몇 년 동안 주 내 가장 낮은 공실률을 기록했으며, 주택 비용은 공적 여론과 정책 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화두가 되었습니다.
무주택 문제는 시 공무원과 납세자의 공격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지속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문제의 존재에 대한 합의는 여기서 끝납니다.
해결책이나 근본 원인에 대한 논의는 언제나 뚜렷한 정치적 경계선을 따라 엉뚱한 방향으로 흐르게 됩니다.
보수파는 노숙자, 약물 남용 및 정신 질환을 허용하는 진보적인 정책을 비난합니다.
진보파는 정부 개입의 부족을 탓합니다.

정치적 포인트를 노리고 자신들의 기반에 호소하려는 양측의 노력 속에서, 연방 정책이라는 노숙자 증가의 주요 요인을 지적하는 데는 주저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1977년, 제럴드 포드 대통령의 재정 계획에는 전국적으로 506,000개의 저소득 주택을 건설하기 위한 예산 제안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1996년 클린턴 행정부 하에서, 연방 정부의 지원으로 새로 건설된 주택은 9,000채에도 미치지 못했습니다.
이는 20년 전의 수치의 2퍼센트도 안되는 숫자입니다.

1980년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의 선거 이후로, 연방 주택 및 도시 개발부의 예산은 지속적으로 삭감되었습니다.
그 결과 공공 주택의 건설, 저소득 주민을 위한 임대 지원, 공공 주택 유지 관리가 줄어들었습니다.

주택에 대한 연방 지원은 지출을 줄이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는 반감의 대상일 수 있습니다.
이런 철학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두 번째 임기에서 기초적인 부분이기도 합니다.
최근에는 MIT의 에란 벤 조셉이 작성한 기사에서 이 문제를 다시 상기시켰습니다.

벤 조셉은 “미국이 주택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아름다운 집을 지었던 시절이 있었다”고 말합니다.
이는 제1차 세계대전 중에 정부가 근로자들이 조선소, 차량 및 탄약 제조업체 근처에 거주하는 것이 전쟁 노력에 필수적이라는 것을 인식했을 때의 일입니다.
미국 주택 공사라는 이름으로 연방 정부는 나라에서 가장 큰 주택 개발업체가 되었습니다.

“이들은 즉석에서 세운 막사나 동일한 집들로만 이루어진 시리즈가 아니었습니다.”라고 벤 조셉은 쓰고 있습니다.
“이들은 공원, 학교, 상점 및 하수도 시스템을 갖춘 잘 설계된 커뮤니티였습니다.
… 그 설계자들은 기능적일 뿐만 아니라 살기 좋고 아름다운 커뮤니티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들은 2년 안에 26개 주에서 80개 이상의 새로운 커뮤니티를 설계하고 건설하였으며 10만 명 이상의 사람들을 위한 거처를 마련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도 유사한 노력이 있었으며 밴쿠버는 이러한 역사적 배경과 친숙합니다.
프루트밸리, 포스 플레인 빌리지, 백리다운스, 오든 메도우스 등과 같은 지역 개발은 당시 새로운 밴쿠버 주택청에 의해 주도되었고 조선소 근로자들을 위한 주택을 제공했습니다.
이들 중 많은 주택은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단순히 공공 주택 프로젝트와 같은 아파트 단지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벤 조셉은 설명합니다.
“그 기관은 근로자와 그 가족이 궁극적으로 소유할 수 있는 단독주택 및 소규모 다세대 주택 건설에 집중했습니다.
이러한 접근 방식은 재산 소유가 공동체의 책임감과 사회적 안정성을 강화할 수 있다는 정책 입안자들의 믿음을 반영한 것입니다.”

이미지 출처:columbi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