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 에스터 감독의 ‘에딩턴’, 중대 사안에 대한 무심코 지나치는 접근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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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 에스터 감독의 새로운 영화 ‘에딩턴’이 시사하는 바는 예리하다.
관객은 처음 몇 분 만에 등장하는 시간 스탬프 ‘2020년 5월’을 보고 불안감을 느낄 것이다.
호아킨 피닉스와 페드로 파스칼은 각각 뉴 멕시코의 작은 시골 마을 에딩턴의 셔리프와 시장 역을 맡았다.
두 사람은 정치적, 개인적으로 대립하며 이야기가 전개된다.
영화 속 장면들은 COVID-19과 맞물린 혼란스러운 기억을 되살린다.
주민들은 음모론에 빠지며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은 사람은 식료품점에서 서비스를 거부당하고, 주변 사람들은 그 상황을 지지하는 모습이다.
조지 플로이드의 살해 소식은 에딩턴의 주로 백인으로 이루어진 공동체에 큰 영향을 미친다.
이 사건은 고립된 상태에 지쳐 있던 사람들의 분노, 인종 불평등에 대한 진정한 분노, 그리고 여유 있는 시간이 맞물리며 일어난 일이다.
에스터 감독은 이러한 집단적 ‘인종각성’의 시기를 잘 포착하였고, 많은 캐릭터들이 경찰의 폭력에 항의하며 거리로 나선다.
그러나 그들의 모습은 존경스럽지만 동시에 성가시기까지 하다.
그들의 지나치게 의식적인 행동은 감독이 선택한 호르몬이 넘치는 젊은 청소년들 덕분에 더욱 강조된다.
‘에딩턴’의 가장 큰 문제는 단순히 냉소적인 시뮬라크르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영화는 그 특정 시점의 혼란과 잘못된 정보, 그리고 갈등을 재현하려 하지만, 그 이상의 깊이는 보여주지 않는다.
특히 영화에서 유일한 흑인 캐릭터인 마이클(미하엘 워드)의 배치가 아쉽다.
그가 경찰관이라는 점은 너무도 편리하게 느껴지며, 이는 마치 농담을 위한 세팅처럼 보인다.
백인 사회 정의 전사들이 ‘경찰과 KKK는 한 패’라고 외치는 동안, 에딩턴에서 유일한 흑인인 마이클은 직무를 수행하고 있다.
한 시위자는 마이클에게 ‘너는 우리와 함께해야 해!’라고 비난하며 흑인으로서의 정체성에 대해 언급한다.
마이클은 경찰관으로서의 책임감 외에는 어떠한 감정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다.
그의 가족이나 비즈니스 외의 친구에 대한 정보도 전혀 드러나지 않는다.
이 영화에서 마이클은 오직 ‘흑인 경찰’로만 존재하며, 이로 인해 캐릭터에 깊이가 부족하다.
영화는 마이클이 경험하는 일들을 통해 이야기를 끌어가는 구조로 되어 있지만, 그의 괴롭힘 당하는 운명은 지적이긴 하지만 예술적이지 못하다.
에스터 감독의 첫 두 작품인 ‘유전’과 ‘미드소마’와 비교했을 때, ‘에딩턴’은 그들의 깊이를 갖추고 있지 않은 듯하다.
조던 필이 ‘겟 아웃은 다큐멘터리다’라고 메신저를 한 것처럼, 에스터 감독도 이러한 역사적 맥락을 다루는 방식에서 시도했을지 모르지만, 그 결과는 그저 비극적 재현이 되었다.
‘에딩턴’은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쌓아진 다양한 메시지를 가지고 있으나, 문제는 그 메시지들이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 결과, 이 작품은 가치 있는 사회적 논쟁보다 피상적인 재현에 불과하게 되었다.
이미지 출처:np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