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잘못 들어서 인신 밀매 혐의로 체포된 대학생, 지명 양의 비극적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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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https://voiceofsandiego.org/2025/06/17/he-wanted-to-record-a-tiktok-but-ended-up-in-immigration-detention/
2024년 6월 9일, LA의 한 대학생인 지밍 왕(23세)은 약 2만 명의 팔로워를 가진 TikTok 사용자로서, 여자친구와 그들의 햄스터 세 마리와 함께 로드트립을 위해 차량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들의 목적지는? 샌디에이고에서 뉴욕시까지의 크로스컨트리 모험으로, 이 과정에서 로스앤젤레스와 라스베이거스를 거칠 예정이다.
그러나 왕이 고속도로에 진입하자마자, 그의 여행은 그를 이민국에 거의 30일간 구금하게끔 만든 악몽이 시작되었다.
이 이야기는 왕의 회상과 정보자유법(Freedom of Information Act)을 통해 입수된 법원 문서에 기반한다.
왕은 팬들의 요청에 따라 국경을 촬영하기 위해 차량을 몰고 나갔지만, 샌 이시드로나 티후아나 대신 주 도로 94번을 따라 동쪽으로 향해 국경 경관을 더 진솔하게 찍기 위해 노력했다.
그는 덜주라의 거친 언덕과 먼지가 많은 트레일에서, U.S. 국경 순찰대 요원들이 개입하려던 가운데, 숨죽이고 있는 30명 이상의 탈북자들을 발견했다.
왕은 그곳에 왜 왔냐는 질문을 받으며 자신의 의도를 설명했지만, 뜻밖에도 그는 통역사로서의 역할을 자청하게 된다.
오후부터 저녁까지, 왕은 요원의 요청을 번역하고, 필요한 사람에게 물과 붕대를 가져다주기 위해 언덕을 오르는 등 바쁘게 움직였다.
또한, 왕과 그의 여자친구는 덤불 속에 숨어 있는 한 쌍을 만나, 그들이 자발적으로 그룹을 도와주고 있는 중국 이민자들 – 총 7-8명과 함께하는 것을 보았다.
그들 중 두 명의 노인 여성과 한 젊은 여성이 도움이 필요하다며 나서자, 왕은 세 명의 여성을 인근 대피소로 نقل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휴대폰 서비스가 없었던 왕은 먼저 차에 탑승하여 특정 대피소를 찾기로 했다.
그가 차를 시작하자, 국경 순찰대 요원들이 그들을 에워쌌다.
순식간에 왕과 그의 여자친구는 체포되었다.
국경 순찰대 요원 한 명은 다른 이야기를 했다.
요원 가이 데이비스는 불법적으로 국경을 넘어온 사람들을 픽업하고 있다는 알림을 받고 블랙 테슬라 차량이 오타이 레이크 도로에서 인근에서 사람들을 픽업하고 있는 상황을 목격했다고 보고했다.
그는 저녁 6시 경, 왕을 목격했고, 왕을 멀리서 지켜보았다고 썼다.
“나는 그들이 주변 덤불 속에서 나와 왕에게 다가가는 모습을 관찰할 수 있었다”고 데이비스는 썼다.
데이비스는 왕을 멈추고 그 커플을 체포했다.
그 후, 다른 요원이 왕과 인터뷰를 진행했다.
그 요원은 “왕이 자신이 많은 팬들에게 가족들을 국경 근처에서 픽업하라는 요청을 받았다고 말했다”고 적었다.
인터뷰 중 왕은 자신의 소통 수단인 위챗 대화를 요원이 검색하도록 허락했고, 요원은 왕의 휴대폰에서 집에 있는 사람들과의 영상과 여권 사진을 발견했다.
인터뷰는 밤 10시 경 종료되었고, 다음 날에도 계속 이어졌다.
왕은 “불법 밀매 사건에 대한 더 많은 정보를 제공할 의사가 있다”고 말했지만, 변호사와 상담하고 싶다고도 했다.
“언어 장벽 때문에 왕의 휴대폰이 번역기 역할을 했다. 그래서 왕에게 더 이상 질문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고 요원은 썼다.
그 시점에서 인터뷰는 종료되었다고 한다.
국경 순찰대는 별도의 의견 요청에 응하지 않았다.
국토안보부의 모니카 요아스는 이민세관단속국(ICE) 대변인이 “ICE는 이 개인에 대해 공개할 수 있는 정보가 없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미국 같지 않다’
왕은 가족들을 픽업하러 간 것이 아니며, 국경 순찰대의 ‘외국인 밀매’ 혐의에 대해 무죄를 주장했다.
그는 해당 여권 사진이 그가 두바이행 비행기를 예약해달라고 요청한 친구의 것이라고 덧붙였다.
“나는 결코 가족을 픽업하기 위해 국경에 간 적이 없다”고 왕은 말했다.
“그들이 발견한 메시지는 지난해 보낸 것이고, 날짜를 확인하지 않았다. 그들은 단지 우리가 성을 공유하고 있다는 이유 만으로 가족이라고 추정했다.”
하지만 왕은 불법 밀매 혐의로 구금되어, 약 10일 동안 캠포 스테이션의 고립 감옥에 수감되었다.
그는 전화 통화도 하지 못하고 아무도 볼 수 없었다.
시간의 감각이 사라져 버렸고, 매일 에너지 바 두 개로 버텨가며, 차가운 바닥에서 얇은 알루미늄 시트 속에서 잠을 잤다고 했다.
이민당국은 왕의 여자친구와 햄스터들을 체포한 지 이틀 후에 석방시켰다.
후에 왕은 캠포 스테이션에서 브라운필드 공항 근처에 있는 또 다른 이민자 보호소로 이송되었다.
그곳에서 왕은 A4셀에 갇혔고, 60명의 다른 남성과 함께 살았다고 회상했다.
그 보호소는 세 명의 노인 여성과 한 젊은 여성이 원한 도움을 요청한 인근 보호소였다.
그 보호소의 방에는 40개의 매트리스가 놓여있지만 모든 매트리스는 둘 또는 세 명이 옹기종기 앉아 있었다.
왕은 “미국 같지 않았다”고 회상하며 덧붙였다.
왕은 자신의 무죄를 설명하고, 국경 순찰대의 입회 요원에게 자신의 운전면허증을 보여주며 그는 영주권자로 TikToker라는 사실을 설명하려고 했다.
전혀 듣지 않았다.
“거짓말 하지 마. 가짜 신분증이야,”라고 한 요원이 왕의 신분증을 가지고 비웃으며 말했다고 왕은 회상했다.
“당신이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그냥 기다리는 것이다”라고 다른 요원이 말했다.
그리고 왕은 기다렸다.
또 다른 10일이 흐른 후, 그는 오타이 메사 구금 센터로 이송되었다.
그 시설은 열악한 조건으로 악명이 높다.
왕과 같은 다른 사람들이 자주 구금 중에 비슷한 경험을 보고했다 — 정신적, 언어적 학대, 음식 부족과 의료 방치 등이 그 예였다.
체포된 지 한 달이 지나, 왕은 마침내 법정에 나아갔다.
판사는 그의 출석에 어리둥절해하며 사건을 즉각 기각했다.
“가족과 세 마리 햄스터와 함께 여행하는 인신 밀매범을 처음 들어보십니까?”라고 판사가 그의 변호사에게 말했다고 왕은 회상했다.
오타이 메사 이민 법원은 7월 2일에 왕의 사건을 기각하며 “사건의 사실과 상황을 재검토한 후 정부의 이익에 부합하지 않을 것으로 판단했다”고 전했다.
왕의 변호사인 멜리사 산도발은 외국인 밀매 혐의가 법적으로 지지받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녀는 이 증거가 왕이 이미 미국 내에 있는 개인들을 이송한 것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그런 행위는 제9순회재판소의 판결에 따르면 밀매의 법적 정의를 충족하지 않는다.
산도발은 언급을 거부했다.
왕은 자신의 24번째 생일을 감옥에서 보냈고, 7월 4일 불꽃놀이가 하늘을 수놓는 가운데 나왔다.
그는 라스베이거스에서 여자친구와 결혼할 계획을 떠올렸다.
비록 왕은 결국 석방되었지만, 그의 경험은 그가 잃을 뻔한 자유를 쓴맛이 남기는 기억이 되었다.
그는 고립된 상태에서 날들을 보내고, 나중에 혼잡한 감금 상태를 경험해야만 했다.
그의 경험은 구금 중 이민자들이 겪는 정신적 고통과 끔찍한 현실을 엿볼 수 있게 해준다.
캠포에서의 고립 감금
주변을 살펴보며 – 매트, 스테인리스 변기, 식수 샘 – 그의 지문과 DNA 채취가 끝난 후 왕은 고립 감금 상태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두려움이 휩싸이면서 골수에서 오는 한기가 느껴졌다.
그는 소리 지르며 문을 쾅쾅 치며 변호사를 만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리겠다고 외쳤다.
“나는 너무 춥다”고 그가 외치자,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왕은 소란을 피우며 점점 절망감이 커져갔다.
결국 한 쭈글쭈글한 알루미늄 포장지가 문 아래로 밀려들어왔다.
그는 그것을 감싸고 있었지만 너무 얇아서 조금만 움직여도 늘어져 잠깐이라도 따뜻함을 잃을 정도였다.
그의 숨은 차가운 공기 속에서 가시적으로 나타났고 알루미늄 포장지 위에서 물방울이 맺히기 시작했다.
조만간 그는 젖었고 그의 피부는 알루미늄의 아연으로 인해 푸른 색조를 띠게 되었다.
정전이 지나치게 많이 지속되었고, 매트는 진흙이 쌓여 있었으며, 물 샘에서는 변기에서 오는 듯한 맛이 나는 물이 흘러 나왔다.
왕은 차가운 콘크리트 바닥 위에 누워 문 아래로 사람들이 드나들며 들리는 소리를 느끼며 내일이 올지를 기다렸다.
왕은 제정신을 잃을 지경에 이르렀다.
그가 갖고 있었던 것은 그의 운전면허증뿐이었고 그는 그것을 반복하며 가지고 놀았다.
이후 작은 돌 하나를 발견했는데, 그건 아마도 그의 신발 바닥에서 떨어진 것 같았다.
그는 그것을 사용해 자신의 경험과 어머니, 여자친구의 이름을 바닥에 새기기 시작했다.
그는 끊임없이 어머니의 이름을 적으면서 그녀와 나 자신을 연결할 수 있을 것이라는 듯이 그를 잘라내고 싶었다.
고립된 상태에서 약 7시간이 지난 후, 왕은 첫 번째 면담을 하게 되었다.
그는 DHS(국토안보부) 관할이 있는 방임을 깨달았다.
요원은 그의 휴대폰을 확인하였는데 왕은 처음 거절했지만, 요원이 정적 감금으로 다시 보내겠다는 위협을 하자 불안감이 밀려들었다.
그는 마지못해 검색에 동의했다.
요원이 그의 휴대폰을 스크롤하며 질문을 던졌다.
왕이 자신의 무고를 설명하거나 입증하려고 할 때, 그는 차단당했다.
“나는 학생이라는 것과 법적 거주자가 있다는 것, 그리고 학교에 전화를 걸어 확인할수 있다고 말했다”고 왕은 회상했다.
“그러나 그는 듣지 않았다. 내가 말할 때마다 그는 말을 끊고 ‘내가 듣고 싶은 것 좀 듣고 싶다’고 했다.”
휴대폰 검사 후 요원은 왕에게 질문을 중단하고 그를 다시 고립 상태로 보냈다.
왕의 절망감은 통제 불능으로 치닫는다.
그는 문을 향해 주먹을 세게 구르고 넘기를 반복했다.
숨이 가빠지고 심장이 두근거렸으며 다리가 약해져 더 이상 서있을 수 없게 되었다.
그는 경비원에게 도움을 청했지만, 경비원은 “자신에게 물어보라”고 말했다.
그는 바닥에서 구르며 소리를 지르며 주목을 받으려 했지만, 그에게 주어진 건 수면제뿐이었다.
결국 피곤이 그를 눕혀 송두리째 잠이 들었다.
국토안보부의 의학 요약서에 따르면, 왕은 6월 15일과 16일에 불안 증세와 함께 호흡 곤란과 가슴 압박 증상 진단을 받았다.
왕은 그의 가장 어두운 순간을 캠포 스테이션에서 고립된 상태로 보냈으며, 이곳에서 약 10일 동안 지냈다.
그가 받은 음식은 두 조각의 끈적거리고 증기가 가득한 빵, 얇은 토마토 조각과 얇은 햄 한 조각이 전부였다고 한다.
그는 카리하와 포기를 느끼며, 일어나서 울다가 잠에 들기를 반복하면서 자신의 신체가 기력을 잃은 정황을 서서히 느끼고 있었다.
“저는 외부, 집, 엄마, 여자친구가 걱정하고 있는게 걱정되었습니다. 그들이 고통받고 있을까봐 두려웠습니다.”
희망, 절망, 끝없는 이송
약 10일이 지나자 왕은 브라운 필드 공항 근처의 다른 보호소로 이관되었다.
“마치 임시 화학 공장 같은 곳이었다”고 왕은 말했다.
그것은 덕트 테이프, 드롭 클로스, 캔버스로 짠 대형 돔 구조물로, 노출된 통풍 덕트가 있었다.
안에는 여러 언어의 “국토안보부”라는 단어가 있는 TV들이 줄지어 배열되어 있었다.
꽉 찬 셀에서 거의 60명과 함께 살면서 그는 드디어 시간의 감각을 찾았고, 처음으로 다른 사람들과 대화할 수 있었다.
그들은 왕의 이야기를 듣고는 그와 함께 칩을 나누며 농담을 해주어 그의 기분을 살려주었다.
왕은 이러한 짧은 순간들에서 위안을 찾았지만 유대감은 갑자기 끊어질 가능성이 컸기 때문에 그들은 금세 이송될 위험이 있었다.
“나는 죽음을 생각하고 있었다”고 왕은 회상했다.
“사회적 연결이 막 형성되었지만, 단지 찢어지기만 했다. 나는 혼자가 되었다.”
그 보호소에 있는 6일째, 그의 이름이 불렸다.
그 시점에서 보호소에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의 이야기를 알고 있었고 그의 긴 구금 기간과 어려움을 공감하고 있었다.
그가 복도 아래로 걸어 내려오자, 다른 셀에서 환호가 터져 나왔다.
그들은 그가 석방된 것으로 생각하고 축하하고 있었다.
하지만 요원이 그의 이름과 바코드를 스캔했을 때, 시스템은 그를 거부했다.
“당신은 잘못된 사람입니다”라고 요원이 말했다고 왕은 회상했다.
황당함에 빠진 왕은 얼어붙어 어떤 일을 해야할지 확신할 수 없었다.
아무도 설명을 해주지 않았고, 그가 다음에 무엇을 해야할지 말해주지 않았다.
그는 수갑을 채운 채로 그의 셀로 오게 되었다.
울음이 흘러내리는 눈물이 얼굴을 타고 흘렀다.
그가 맛본 불확실성과 희망이 빠져나가는 것을 느끼며.
그가 그의 셀로 돌아가자, 몇몇 동료 수감자들이 에워싸며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었다.
그의 절망을 감지한 사람 중 한 명이 저녁 샌드위치에서 나온 육류 조각을 조심스럽게 건네주었다 — 그 출처는 아무도 몰랐다.
서로 다른 출신에서도 그들은 서로를 믿으며 위안을 주기로 선택했다.
또 한번, 왕의 이름이 다시 불렸으나 결과는 변하지 않았다 — 그는 전송될 수 없었다.
그는 더 이상 아무런 감정을 느끼지 못해, 그의 감정은 소진되었고, 눈물이 마른 지 오래였다.
몇 일이 지나 후 그는 최종적으로 세 번째로 버스를 타고 오타이 메사 구금 센터로 이송되었다.
오타이 메사 구금 센터 내부
샌디에이고 외곽에 위치한 오타이 메사 구금 센터는 높은 울타리와 보안탑에 둘러싸인 대규모 단지이다.
이곳은 사설 계약자로 운영되는 이민 구금 센터로, 최대 1,040명의 구금자를 수용하고 있으며, 대부분은 이민 사건의 법원 명령을 기다리고 있다.
구금자들에 따르면 오타이 메사는 A, B, C 섹션 등으로 구분되어 있으며, 각각 약 100명이 수용된다.
이 섹션들은 두 개의 층에 걸쳐 있으며, 한 층에 7개 또는 8개의 셀이 있고 각 셀에는 8명씩 들어가 있다.
시설에는 고립 감금 셀과 소수의 사람들을 수용할 수 있는 작은 셀도 포함되어 있다.
왕이 첫 입소했을 때, 그는 약 3도움을 모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수용소에 다수 입소하였다.
“그들은 한 명씩 부르는 방식으로 우리를 공용욕실에서 보관해야 하고, 리넨을 차려 입게 했다”고 말했다.
“우리가 모두의 복장에 갈아입을 때까지 1시가 되었고, 우리는 거의 5시간 동안 서 있었다.”
그는 L섹션의 2인 셀에 배정받았다.
그는 혼자였다. 다음 2일 동안 그는 그 셀에서 홀로 지냈다.
그는 그 당시 그를 지탱해준 것은 바지 주머니 깊이 숨겨두었던 연필뿐이었다.
그는 구금 센터에서 발급받은 책에 기록하기 시작했다.
왕이 작성한 2024년 6월 22일 일기 항목은 불면증, 새로운 세라실메이트,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로 인한 정서적 고통을 기술하고 있다.
[번역: 6월 22일… 나는 당신이 걱정하고 있을까 두려워요. 그 생각 하나가 나에게 아픔을 줍니다.
마지막 문장을 쓴 후, 나는 새로 들어온 방 세라실메이트와 대화하기 시작했다. 그 사람은 쿠바 사람이고 영어를 못 해서 소통하기 어렵기만 하다. 하지만 적어도 그는 아프지 않아, 기침도 없고, 이러면 오늘 좋은 밤의 잠을 잘 수 있는 조건이 맞겠다.
우리는 당신에 대해 이야기했고, 당신의 그림을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나는 참지 못하고 너무 많이 울러빠져버렸어요. 하지만 지금은 조금 나아졌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올바른 마음가짐을 유지하는 것입니다.]
이틀 후, 왕은 K 섹션의 다른 셀로 옮겨졌다.
그곳에서 그는 매일 밤 피를 토한 이란 사람과 같은 셀에 배정되었다.
“매일 사람들은 영양 부족으로 기운이 없거나 기절하여 응급 치료를 받아야 했다”고 왕은 말했다.
다른 일부 중국 이민자들과 이야기 중 비슷한 경험을 공유한 그들은 왕과 함께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그들은 “의사나 의료 지원을 받기 위해서는 모든 요청을 서류로 제출해야 하며, 대기 시간이 길어지기 때문에 대부분은 받아보지 못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기절하거나 죽을 지경이 되지 않으면 아무도 즉각 응급조치를 해주지 않는다”고 한 구금 센터의 한 담당자가 강조했다.
왕은 “매일 같은 일이 반복된다.”
그는 다음으로 이송되었으며, 여전히 아프고 혼란한 상태에서 셀 창문이 포함된 방에 수감 중이었다.
그는 주변 사람들이 돌아가고 떠나는 것들을 다시 보고 있다. 그와 유사하게, 고립된 상태에서 기약 없는 시간에 지켜보는 것이 끔찍하고 가슴 아픈 기억으로 남았다.
체포된 후 20일이 지난 거기, 왕은 기초 식사로 매일 3온스의 콩과 채소로 만들어진 반죽을 먹어야 했다.
“그것의 양은 3온스보다 적고 세균의 냄새가 스며들어 여기에 안치된 경우가 많았다”며 왕은 말했다.
그 밖의 음식은 밥과 삶은 감자와 함께 소금 및 후추 작은 포장으로 주어졌다.
셀 행정관이 식사를 위해 복도로 들어오는 경우가 있으며, 그가 많은 식사를 하려고 할 때 자신들이 시간을 소비하지 않도록 하는 방법을 깨달았다.
“수십 초 간 자유롭게 움직였을 때, 나는 내가 가장 소중한 찰나였다”고 왕은 회상했다.
미국 친구 봉사 위원회(American Friends Service Committee)의 프로그램 조정자인 아드리아나 하소는 오타이 메사 구금 센터를 여러번 방문한 경험이 있다.
그녀는 이 시설에서 방문하는 작접에서 가정의 청소상황에 대해 논하며 고민했다.
산디에이고 이민 변호사인 이안 세루엘로는 오타이 메사에서 매번 우울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이곳에서 구금된 내 생각은 끔찍하게 아프고, 나는 사람들이 어떤 때는 심각한 상황에 놓이게 되는 모습을 못 보겠다”고 말했다.
왕은 다음 날 자신의 셀과 고립된 방을 잃어버렸고, 여전히 그 방에서 자주 오랫동안 머물고 있는 동안 바닥에 새로운 글쓰기 작업을 적어 내려가며 감정을 익혀왔다.
그가 비록 구금 중에 통신의 제약을 받았으나 정신 상태는 집에 가족과 함께 있으며 존재해야 할 곳이 귀찮고 아프게 느껴졌다.
그 뒷면에 그가 썼던 기록을 기록했던 방에는 벽이 여러 언어, 글자와 숫자로 채워져 있었다.
“나는 처음 보았을 때 겨울철을 느끼며 눈물을 흘렸다”고 왕은 회상했다.
“순전히 끔찍하고 가슴 아픈 상황이었다.”
영양부족이 셀에서도 문제였다.
매일 왕은 3온스 이하의 식사 반죽만 가지고 살아남아야 했다.
그는 매우 작은 보양을 소음이 변할만한 끝에 있었다.
하나의 남자와 접한 일이 가장 좋았던 식사는 후추와 함께 찾은 닭 양파 수프였다.
가끔씩 요원이 복도의 중앙에 식사 카트를 놓고 각 게이트를 열어 구금자들에게 스스로 식사를 가져오도록 하였다.
“그 순간 이탈한 듯한 느낌을 신뢰할 수가 없었다”고 왕은 말했다.
오타이 메사 구금 센터의 환경에서 온 개인들은 그에 대한 민간 시청자와 석방자들에게 각자의 의견을 여러 가지로 밝혀 놓고 있다.
매일 자주 이곳에는 함수선이 누르지 않거나 노이즈를 일으키며 서로에게 자신과 그들의 울려대는 상황에 따라 변화를 감지하여 도움을 요청한다.
2023년에만 6,521명의 이민자들이 미 이민세관단속국 시설에서 구금되었으며 평균 체류 기간은 31일로 나타났다.
하지만 많은 구금자들은 왠지 자신들이 더 오랜 기간 동안 구금되어 있다고 느낀다.
국경 나눔의 총괄 관리자인 덜세 아기레는 자신이 만난 많은 이민자들이 자신의 사건이 심사되기까지 3-4년을 기다리기를 요구한다고 말했다.
“나는 전반적으로 시스템에 문제가 있다고 본다. 우리가 답변을 요청하거나 업데이트를 요청할 때도 큰 지연이 요구된다.”
언어 장벽 때문에 많은 수감자들은 그들이 작성해야 하는 양식의 목적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왕은 여러 중국 이민자들이 그들의 정보를 영어로 번역하는 것을 도와주었지만, 나중에 서명한 양식이 자발적인 송환 동의서라는 것을 발견했다.
이 문서에서는 수감자들이 이민 신분을 contest 하거나 법률 자문을 구하지 않고 자발적으로 추방되는 것에 동의한다.
“많은 사람들은 뭐가 일어나는지 전혀 모르며 속아 넘어간 끝에 추방 비행기를 타게 된다.
왕이 말하기를 “영어를 할 수 있는 사람은 그곳에서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2023년과 2024년, ICE는 91억 달러의 예산으로 운영되었다.
예산 보고서는 2025년에는 추가로 5억 5천 6백 80만 달러가 배정될 것이라 보고하며 총 예산이 거의 97억 달러로 높아질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알 오트로 라도의 관리 변호사 프리실라 메리다에 따르면 구금 센터에서 기다리는 시간이 이민 절차에서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음을 시인했다.
“결국, 내 의견으로는 구금되고 끔찍한 조건, 의료 방치와 치료의 피해를 받는 것이 그들의 due process 권리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합니다.”
결과
왕은 오타이 메사에서 석방된 후 거의 모든 것을 잃었다 — 그의 차, 두 대의 휴대폰, 그리고 모든 은행 카드를 포함한 지갑 또한 잃었다.
그는 두 번 이사를 했고 차를 압수하려고 싸운 지 3개월이 지나도록 투쟁 중이었다.
오타이 메사에서 몇 차례 연락을 시도했지만, 그의 두 대의 휴대폰은 여전히 실종 상태였다.
한 대는 나중에 멕시코에서 활성화되었다고 애플의 위치 추적 앱에서 보여주었다.
그는 법무부와 국토안보부로부터 여러 문서 더미를 받았지만, 그 중에는 어떤 사과나 보상도 없었다.
왕은 “나는 구금되지 않았던 감정도 없었지만,(그가 체포된 시점에) 불법 이민자 세 명이 내 차에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고 말했다.
“그러나 전반적인 시스템이 혼란스러웠고, 그로 인해 내가 이런 상처를 받아서는 안 되는事情을 남긴 것이다.”
그는 지금 불면증에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가끔 밤 중에 악몽에서 깨어난다.
그의 사건은 그가 겪은 자유의 위기를 깨닫게 한 아픔으로 인식되고 있다.
“만약 모든 것이 다시 시작된다면, 저는 미국을 떠나기로 선택할 것입니다. 절대 돌아오지 않을 것입니다.”
왕은 2024년 12월에 귀국 항공편을 예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