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une 6, 2025

한국 국적법 개정의 파장, 동포 청년들의 복잡한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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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https://www.latimes.com/world-nation/story/2025-03-03/they-didnt-know-they-were-citizens-now-they-are-expected-to-serve-in-the-south-korean-military

워싱턴을 기반으로 한 이민 변호사 전종준은 매주 여러 번 한국계 미국인으로부터 전화 전화를 받는다.
모두가 동일한 발견을 했다: 자신이나 그들의 미국 태생 자녀가 한국 국적을 소지하고 있으며 포기할 수 없다는 것이다.
법의 여러 가지 실제적인 함의에 대해 그는 설명한다.
전화의 많은 경우는 이제 막 18세가 된 젊은 남성들이 한국의 군대에서의 약 2년간의 복무를 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경우이다.
남성 시민에게 의무인 군 복무는 18세가 지난 이후에는 필수이다.
포항의 해병대 기지에서 훈련 교관 뒤에 서서 신병들은 가족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어떤 이들은 미국 군대의 일원이며 갑자기 한국으로의 배치가 불가능해졌다.
또 다른 이들은 일이나 결혼을 위해 한국으로 이주하고 싶어 하지만 군 복무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평범한 민간인들이다.
군 복무는 한 달에 고작 447달러라는 낮은 급여를 제공할 뿐만 아니라 가족과 경력을 방해할 수 있다.
또한 한국 대학의 유학 프로그램에의 합격이 취소된 경우도 있다.
이는 오로지 본국의 외국인만이 자격이 있다.
이 법은 한국에 발을 디딜 계획이 없는 한국계 미국인에게도 영향을 줄 수 있다.
국가 안보나 원자력과 같은 민감한 미국 정부 일자리를 추구하는 이들이 이중 시민권을 금지하는 직업에서는 더욱 그렇다.
“아직도 이 법의 영향을 받는 이들이 자신이나 자녀가 영향을 받는지도 모르는 경우가 많아요.” 라고 전 변호사는 말했다.
“나는 이 문제로 인해 은퇴할 수 없는 상태입니다.”

문제는 유승준이라는 가수로부터 시작됐다.
1976년 서울에서 태어난 유는 12세에 가족과 함께 캘리포니아로 이민을 갔다.
그는 결국 한국의 한 연예 기획사에 주목을 받아 서울로 돌아가 음악 활동을 시작하면서 한국에서 가장 사랑받는 스타 중 한 명이 되었다.
그는 애국적인 아들로서의 이미지를 유지하기 위해 미디어 인터뷰에서 다른 이들이 재산이나 지위를 이용해 군 복무를 피하는 것과는 달리 두 년의 의무 군 복무를 할 것이라고 팬들에게 약속했다.
그러나 2002년, 그의 징집 통장을 받은 지 6개월 만에 유는 미국으로 여행을 가고 미국 시민으로 귀화하며 한국 국적을 포기했다.
그는 즉시 군 복무 의무에서 면제되었다.
이로 인해 발생한 국가적 분노에 대응하여 입법부는 2005년에 군 복무를 완료하기 전에 한국 국적을 포기하기 어렵게 만든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 법의 주요 표적은 아들이 군 복무를 피하기 위해 한국을 방문한 부모들이었다.
하지만, 영주권을 가진 가족의 미국 태생 아들인 그들은 면제되지 않았다.
그들이 부모에게서 상속받은 한국 국적은 원래 22세에 자동으로 만료되었다.
그러나 새로운 법에 따라, 18세가 되는 해 3월 전에 포기를 하지 않으면 38세가 될 때까지는 국적을 포기할 수 없다.
이 법은 미국에서 거의 주목받지 않았기 때문에 많은 젊은 남성들은 시기가 늦은 후에야 알게 된다.
이것이 그들이 전 변호사에게 전화를 하게 되는 이유다.
그는 이 법 때문에 약 250,000명의 해외 동포들이 이중 국적을 무의식적으로 가진 것으로 추정한다.

한국의 병무청(징집 기관)은 이중 국적자가 징집 기피로 기소된 수에 대한 기록을 보관하지 않는다고 대변인이 말했다.
그러나 2011년 이후로 417명이 군 복무를 하였고, 그 중 122명이 한국계 미국인이다.
극복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지 못한 사람들은 남아있는 법정에서 어떤 경우에라도 군 복무에 복무할 수 없다.
“이 법에 대한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오는 많은 사람들은 과정의 중간에서 포기하게 됩니다.” 라고 전 변호사는 말했다.

법의 적용을 받아 감당해야 하는 이들은 개인적으로 한국과의 이유와 경험이 없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자신의 성이 박인 32세의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는 대학 시절 어머니가 자신이 다니는 교회에서 한국에 가겠다던 젊은 남자가 군대에 징집될 것이라는 걸 언급했을 때 이 법에 대해 처음 알게 되었다.
그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는 한국으로 이주할 계획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2015년, 중국에서 유학하는 동안 한국 여자와 연애하게 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사람들은 서울의 서울로 여행을 간뮤니다.
상황은 심각해졌다.
한국인이 됐다.
전 군 복무를 하여 한국에서 합법적으로 살거나 일할 수는 없었다.
그는 자신이 미국인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는 한국어도 잘 하지 못했다.
2020년, 헌법재판소는 2005년 법이 해외 동포에게 불균형적인 부담을 준다는 추정이 진정한 권리를 위반한다고 주장한 한국계 미국인 학생의 요구를 인정했다.
이 법을 개정하기 위해 입법부에 명령이 내려졌다.
박과 그의 약혼녀는 뉴스를 통해 이 판결을 보고 기뻐했다.
“우와, 드디어 이렇게 될 거야.” 박은 생각했다.
“그들이 반드시 우리를 위해 고칠 것이라 믿었고, 우리는 함께 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습니다.”
그는 2022년 10월 한국에 이주하여 결혼했으며, 한국 국적을 포기하고 외국인 배우자 비자를 신청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정부가 시행한 조치는 실질적으로 exceptional harm을 입증할 수 있는 이들에게만 구제책을 제공했다.
미국에서의 직업 상실을 예로 든 피해자만 인정되었다.
“단순히 18세가 되었을 때 국적을 포기해야 한다는 사실을 모른다는 것은 정당한 이유로 고려되지 않는다.”라고 변호사가 말했다.
“그 법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어요.”
2022년 10월부터 작년 12월까지 435건의 신청 중 134건이 승인되었다고 법무부가 밝혔다.
박은 현재 자국에서 군 복무 기피자로 여겨질 수밖에 없다.
그는 미국 기업에서 원격으로 근무하고 있으며, 지역 세금 기록이 없기 때문에 그가 적발되지는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는 정부에 결혼을 공식적으로 등록하지도 않았다.
왜냐하면 그가 군 복무에 대해 질문받을 까봐 두렵기 때문이다.
그가 적발될 경우, 최대 수년간 감옥에 갈 수도 있다.
무작위의 순간에, 관광 비자가 만료되기 전에 그는 미국에 몇 개월 간 홀로 머물기 위해 떠난다.
한 번 공항 이민 관리자가 그에게 한국 시민인지 그냥 물어본 경우는, 그는 그 질문을 피하고 두 부모가 미국인이다고 말했다.
“나는 심장이 멈출 것 같았다.” 그는 회상했다.
그는 군 복무를 마치겠다고 생각하기도 했지만, 현실을 직시하면 괴로워졌다.
그의 한국어는 여전히 불완전하다.
그의 두 년의 군 복무가 끝날 때까지 직장도 없어질 것이다.
“그것은 재앙이 될 것이다.”라고 그는 말했다.
“우리는 모두 노동자 계층 가정에서 왔으므로, 나는 2년 동안 일하지 못할 처럼 견딜 수 없다.”
“나는 단지 내 인생을 시작하고 싶고, 세금도 지불하고 싶다. 모든 것을 합법적으로 하고 싶다.
하지만 이제는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2005년 법이 공개된 지 8년이 지나서야 전 변호사는 법을 최초로 알게 되었다.
그는 한국대학에 지원했던 젊은 한국계 미국인으로부터 전화한 고객으로부터 이 법의 존재를 처음 알았다.
“나는 자녀가 같은 상황에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나는 신문 기사를 이어 작성하여 많은 사람들이 이 문제에 대해 알아야 하겠다고 생각했습니다.”라고 전 변호사는 말했다.
그는 이 법의 주요 반대자로 자리 잡았다.
신문 기고문을 작성하고 이중 국적을 가진 이들이 헌법재판소에 소송을 제기하도록 돕고 있다.
전종준은 한국 정부의 주요 인사들과 면담하며 법을 수정하여 남자에게 상속된 한국 국적이 수 2005년 전달되기 전에 자동으로 만료되게끔 하기를 원했다.
그는 한국을 방문할 때의 위험에 대해 고민해 보았다.
정부는 한국에서 일하고 정착하는 이중 시민만을 목표로 한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2019년의 한 사건에서 잘못될 수도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2019년에 한 40세의 한국계 미국인 식당 주인이 아버지의 장례식으로 한국을 방문했으나, 징집 기피자가 되어 몇 시간 동안 구금되었다.
그는 한국에서 국적 포기를 요구하며 한 달 동안 갇혀 있어야 했다.
전 변호사의 최신 도전 과제 중 하나는 핵 에너지를 포함한 미국 해군 프로그램에 수석을 맡는 여성을 위한 경우였다.
그의 출생 당시 어머니는 미국 시민권 취득이 가까워 한국 국적을 갖고 있었고, 18세가 되었을 때 그는 이미 한국 국적을 포기할 수 없었다.
일단 미국 해군은 그가 한국 정부와의 연관이 없다는 서명을 받은 것을 수용했다.
“그러나, 나는 그것이 해결책이 아니라고 생각하며, 이 문제가 완전히 종료된 사건이 아닙니다.” 그의 아버지가 말했다.
“내 아들이 한국에 가면 지금 범죄자가 될 것 같습니다.”
현재로서는 한국으로 가족을 방문하는 모든 여행이 중단되었다.
“내 아들이 한국에 가면 지금 범죄자이다.” 아버지가 말했다.
전 변호사는 이 법이 곧 바뀔 것이라고는 희망하지 않고 있다.
유승준에 대한 수십 년 간의 대중의 강한 분노는 지우기 힘들다.
정부는 그의 한국 입국을 금지했고 2015년부터는 영주권 요청을 세 번 거부했다.
유는 소송을 하고 2023년 최고 법원에서 승소했다.
그러나 별도의 행정 조치인 입국 금지는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
유는 여러 차례 댓글 요청에 응답하지 않았다.
두 년 전, 한 친절한 입법자는 국민법에 대한 새로운 개정을 초안했으나 제안 투표에서 10표를 얻지 못했다.
다른 사람들은 비자 요건을 더욱 강화하자고 제안하고 있다.
“어떤 면에서 유는 대중의 불만을 해결하기 위한 희생양이 되었고, 정치 지도자들은 이 문제에 대해 공을 쏟지 않으려 한다.”라고 전 변호사는 말했다.